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이길(而吉), 호는 당사(棠沙). 민구손(閔龜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찬성 민제인(閔齊仁)이고, 아버지는 현령 민사안(閔思安)이며, 어머니는 함안여씨(咸安呂氏)로 여공정(呂公正)의 딸이다. 아들이 민영(閔栐)이다. 민여임(閔汝任)·민여검(閔汝儉)·민여신(閔汝信)이 사촌형제다.
1572년(선조 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지평이 되고, 그해 검열 김락(金洛)의 부당한 승품(陞品) 및 감찰 유희서(柳熙緖)의 부당한 경직(京職) 전보를 탄핵하였다. 1591년 교리가 되고, 이듬해 우부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이 되었다. 이해 임진왜란으로 조정이 의주로 파천(播遷)하자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1594년 분호조참판(分戶曹參判)이 되어 군량미 조달에 힘썼고, 1595년 동지중추부사로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의 진중에 파견되어 진격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1598년 좌윤이 되고, 이듬해인 1599년 경상감사로 나갔다가 다시 형조참판으로 들어왔다. 그해 다시 함경감사로 나아가 치적을 올렸다. 1604년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