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한국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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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결성되었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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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81년 결성되었던 정당.
연원 및 변천

1980년 11월 정치활동금지조치가 해제된 뒤 유치송(柳致松)과 신상우(辛相佑)를 중심으로 구야당계 정치인들이 주축이 되어 과거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신인들을 많이 포섭하여 1981년 1월 창당되었다. 창당대회에서 채택한 강령과 기본정책에 나타난 당의 이념은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교체, 기업의 자율과 공정한 분배, 언론자유창달, 평화적 민주통일 등이다.

창당대회에서 유치송을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고, 신상우가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민주한국당은 1981년 2월 제12대 대통령선거에 유치송을 후보자로 내세워 참여하였으나, 7.7%를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 해 3월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선 거에서는 전체 유효투표의 21.6%를 획득하여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81석의 의석을 확보하였으며, 그에 따라 제5공화국의 제1야당으로 부상하였다.

제11대 국회 개원 이후 한편으로는 집권 세력에 협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타협노선에 따라 활동하여 대중으로부터 야당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984년 4월과 11월에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많은 수의 야당계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이 허용되자, 그들 다수는 김영삼(金泳三)과 김대중(金大中)의 지원하에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이라는 새로운 강성야당을 창당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주한국당의 야당성 결여에 비판적이었던 국민대중은 신한민주당에 지지를 보냈고, 이러한 여론의 동향에 따라 민주한국당에 소속되어 있던 1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탈당,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민주한국당은 이러한 충격을 수습하면서 1985년 2월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35석을 확보하였다. 이는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확보하였던 의석에서 절반 이상을 상실한 것이었다.

반면, 선거 직전에 창당된 신한민주당은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67석을 확보하였다. 이로써, 민주한국당은 신한민주당에 제1야당의 지위를 빼앗겼고, 소속 국회의원들이 그 해 4월 잇따라 탈당, 신한민주당에 입당함으로써 민주한국당에는 국회의원 당선자 3명만 남게 되었다.

이 후 유치송을 중심으로 당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였으며, 시일이 경과하자 원외지구당 위원장들마저 다수 탈당하였다. 민주한국당은 1988년 4월에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 5명의 지역구입후보자를 내세우고 참여하였으나 총재 유치송을 비롯하여 전원이 낙선하였다. 이처럼 국회 의원선거에서 당선자를 단 1명도 내지 못함에 따라 정당법에 의거 정당등록이 취소되어,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정당사』 3(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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