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선조 26) 선조가 평안·경기 감사에게 명해 평양·벽제·한성 등 명나라 원병이 전사했거나 병사한 곳에 단을 설치하고, 「칙사민충단(勅賜愍忠壇)」이라는 글을 내려 제사하게 하였다.
또한, 안강현에서는 경상감사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상주·충주·양주·중화 등 명군이 전사한 곳에도 설단(設壇)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홍제원(弘濟院)에는 명나라 유격(遊擊) 진운홍(陳雲鴻)의 민충단이 있었다.
왜란 중에는 명나라의 제관(祭官)이 와서 직접 제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명나라 황제가 제관을 보낸 것은 1595년 2월로서 평양과 벽제 싸움에서 죽은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파견된 명나라 제관 중에는 진귀한 물건을 소지하고 와서 조선인에게 매매 행위를 하는 일이 발각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명나라가 더이상 제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왕이 근신(近臣)을 보내어 제사하거나, 각 고을의 수령이 중심이 되어 치제(致祭)하다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즈음에는 이미 폐지되어 제사가 행해지지 않았다.
1668년(현종 9) 3월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의 요청으로 다시 시행되었으나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었다. 가끔 반청(反淸)의 기운이 고조되거나 괴질(怪疾)이 번질 때 근신을 보내어 치제하였다.
1775년(영조 51) 8월 집의(執義) 유의양(柳義養)의 건의를 받아들여 예전 임진왜란 때 명군이 전사한 지역에 다시 대대적으로 제단 조성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뒤에도 치제가 계속 행해졌는지는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