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충단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장(戰場) 근처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심어 그 땅에서 죽은 명나라 군사들의 혼을 제사지내던 곳을 지칭하는 용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장(戰場) 근처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심어 그 땅에서 죽은 명나라 군사들의 혼을 제사지내던 곳을 지칭하는 용어.

내용

1593년(선조 26) 선조가 평안·경기 감사에게 명해 평양·벽제·한성 등 명나라 원병이 전사했거나 병사한 곳에 단을 설치하고, 「칙사민충단(勅賜愍忠壇)」이라는 글을 내려 제사하게 하였다.

또한, 안강현에서는 경상감사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상주·충주·양주·중화 등 명군이 전사한 곳에도 설단(設壇)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홍제원(弘濟院)에는 명나라 유격(遊擊) 진운홍(陳雲鴻)의 민충단이 있었다.

왜란 중에는 명나라의 제관(祭官)이 와서 직접 제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명나라 황제가 제관을 보낸 것은 1595년 2월로서 평양과 벽제 싸움에서 죽은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파견된 명나라 제관 중에는 진귀한 물건을 소지하고 와서 조선인에게 매매 행위를 하는 일이 발각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명나라가 더이상 제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왕이 근신(近臣)을 보내어 제사하거나, 각 고을의 수령이 중심이 되어 치제(致祭)하다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즈음에는 이미 폐지되어 제사가 행해지지 않았다.

1668년(현종 9) 3월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의 요청으로 다시 시행되었으나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었다. 가끔 반청(反淸)의 기운이 고조되거나 괴질(怪疾)이 번질 때 근신을 보내어 치제하였다.

1775년(영조 51) 8월 집의(執義) 유의양(柳義養)의 건의를 받아들여 예전 임진왜란 때 명군이 전사한 지역에 다시 대대적으로 제단 조성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뒤에도 치제가 계속 행해졌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참고문헌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