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古靈). 자는 사원(士源). 호는 상체헌(常棣軒). 초명은 망구(望久)였다. 아버지는 박용서(朴龍瑞),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홍이사(洪以泗)의 딸이다. 권해(權瑎)·이현일(李玄逸)의 제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박용서에게 글을 배웠고, 16세에 울산 언양(彦陽)에서 귀양살이 중인 권해를 찾아가 문인이 된 뒤로 권신경(權信經)·오희창(吳喜昌)·송식(宋湜)·정강중(丁康仲) 등 여러 동학들과 함께 권해를 따라 다니면서 학업을 닦았다.
1721년(경종 1)에 진사가 되고, 1739년(영조 15)에 숭덕전(崇德殿) 참봉이 되었다. 고향에서 서당을 열고 후진 교육에 진력하여 진사 김경천(金敬天)·서석린(徐錫麟) 등 학자를 길러냈다.
벼슬은 참봉에 그쳤지만 후진 교육과 학문에 힘썼으며, 이재(李栽)·권상일(權相一)·정만양(鄭萬陽)·권만(權萬)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또 효행이 널리 알려져 어사 박문수(朴文秀)와 경상도관찰사 김한철(金漢喆)에게 몇 차례의 천거를 받았으나 끝내 정문은 서지 못했다.
저술에도 힘써 『춘추인씨지(春秋人氏志)』·『사략변의(史畧辨疑)』(또는 『증사변의(曾史辨疑)』라고도 함) 『주사기언(朱史畸言)』·『동감촬요(東鑑攥要)』·『사서주토(四書註吐)』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권상일과 함께 『학성지(鶴城志)』를 공편하였다. 시문집인 『상체헌유집(常棣軒遺集)』 5권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