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우참찬,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상지(尙之)
현계(玄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2년(선조 35)
사망 연도
1653년(효종 4)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충청남도 온양
주요 관직
병조판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우참찬,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지(尙之), 호는 현계(玄溪). 온양 출신. 할아버지는 박옹(朴顒)이고, 아버지는 박효남(朴孝男)이며, 어머니는 정희준(鄭希俊)의 딸이다. 관찰사 박초(朴초)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32년 정언이 되었고, 1634년 지평이 되었으며, 이듬해 『홍문록(弘文錄)』에 올라 홍문관부수찬·부교리를 역임하였다.

1641년 수찬이 된 뒤, 집의·교리를 차례로 거쳐, 1643년 사간이 되었으며, 이어서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647년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대사헌·경주부윤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도승지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지경연(知經筵)과 지춘추관사를 겸하였고, 이듬해 진향부사(進香副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헌·지의금부사·우참찬·예조판서 등을 거쳐, 다시 병조판서가 되었다.

1653년 병조판서로 재직 중 갑자기 죽자, 왕은 매우 애통해하며 관련 관서로 하여금 관재(棺材)와 상장(喪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자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박서는 군국사(軍國事)에 효종과 뜻을 같이하여 오랫동안 병조판서직에 있으면서 군사력 정비에 힘써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