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봉경(奉卿), 호는 죽촌(竹村). 할아버지는 참판 박진원(朴震元)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박계영(朴啓榮)이며, 어머니는 유명남(柳命男)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경술(經術)과 문학에 힘을 많이 기울여, 1652년(효종 3)에 진사가 되었고, 1660년(현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주판관을 지낼 때 선정을 베풀어, 임기가 끝난 뒤 백성들의 유임상소로 재임되기도 하였다.
뒤에 좌부승지를 거쳐, 1679년(숙종 5)에는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역시 선정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680년에는 형조판서로 특진되었다. 이듬해 한성판윤으로 재직 중에 아들인 박성의(朴性義)가 범한 죄로 인하여 안변부사(安邊府使)에 좌천되었다가 1685년에 호조판서에 다시 승진하였다. 서예로 이름이 높았으며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편저로는 『밀양박씨족보(密陽朴氏族譜)』가 있다. 시호는 청숙(淸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