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좌부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봉경(奉卿)
  • 죽촌(竹村)
  • 시호청숙(淸肅)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687년(숙종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주판관|좌부승지|경상도관찰사
  • 출생 연도1631년(인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원동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박신규 글씨 미디어 정보

박신규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좌부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봉경(奉卿), 호는 죽촌(竹村). 할아버지는 참판 박진원(朴震元)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박계영(朴啓榮)이며, 어머니는 유명남(柳命男)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경술(經術)과 문학에 힘을 많이 기울여, 1652년(효종 3)에 진사가 되었고, 1660년(현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주판관을 지낼 때 선정을 베풀어, 임기가 끝난 뒤 백성들의 유임상소로 재임되기도 하였다.

뒤에 좌부승지를 거쳐, 1679년(숙종 5)에는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역시 선정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680년에는 형조판서로 특진되었다. 이듬해 한성판윤으로 재직 중에 아들인 박성의(朴性義)가 범한 죄로 인하여 안변부사(安邊府使)에 좌천되었다가 1685년에 호조판서에 다시 승진하였다. 서예로 이름이 높았으며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편저로는 『밀양박씨족보(密陽朴氏族譜)』가 있다. 시호는 청숙(淸肅)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번암집(樊巖集)』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