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포옹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건명(李健命)이 박인상을 추천코자 하였으나 등과(登科)하지 않고 바로 벼슬에 나가는 것은 군자로서의 할 도리가 아니라고 사양했다.
박인상은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양현의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발론(發論)하였고, 숙종이 죽자 윤지술(尹志述)과 함께 3년 복제(服制)를 바로 행할 것을 상소하였으며, 또 윤지술 등 관유(館儒) 7인과 함께 명릉(明陵) 지문(誌文)을 고쳐야 한다고 상소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냈다.
1763년(영조 39) 수직(壽職: 노인에 내리는 관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르고, 1765년 회혼례(回婚禮, 해로한 부부의 혼인 예순돌을 축하하는 기념잔치)를 올렸으며, 176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저서로는 『포옹집(圃翁集)』이 있다.
참고문헌
- 『포옹집(圃翁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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