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성보(聖甫), 호는 포옹(圃翁), 또는 매국헌(梅菊軒).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박시화(朴始華)이며, 어머니는 장택고씨(長澤高氏: 지금의 장흥군) 고두원(高斗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지조(志操)가 고결(高潔)하였다. 21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예절을 다하여 3년상을 치루었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7년 성균관에 들어가 지명인사들과 사귀면서 4대신의 문정(門庭)에 출입하였다.
이건명(李健命)이 박인상을 추천코자 하였으나 등과(登科)하지 않고 바로 벼슬에 나가는 것은 군자로서의 할 도리가 아니라고 사양했다.
박인상은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양현의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발론(發論)하였고, 숙종이 죽자 윤지술(尹志述)과 함께 3년 복제(服制)를 바로 행할 것을 상소하였으며, 또 윤지술 등 관유(館儒) 7인과 함께 명릉(明陵) 지문(誌文)을 고쳐야 한다고 상소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냈다.
1763년(영조 39) 수직(壽職: 노인에 내리는 관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르고, 1765년 회혼례(回婚禮, 해로한 부부의 혼인 예순돌을 축하하는 기념잔치)를 올렸으며, 176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저서로는 『포옹집(圃翁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