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학로(學魯). 박세훈(朴世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박충우(朴忠佑)이고, 아버지는 훈련원정(訓鍊院正) 박치공(朴致恭)이며,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郞) 한여림(韓汝臨)의 딸이다. 13세 때 재종숙부 찰방 박치안(朴致安)에게 입양되었다.
1617년(광해군 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5년(인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보직되었고 뒤에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형조좌랑·병조좌랑 겸 기사관을 지냈다.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나아가 학문의 진흥에 힘썼으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다시 병조정랑·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예조정랑 겸 기주관(禮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제천현감(堤川縣監)을 거쳐 통례원상례 겸 편수관·지제교(知製敎)·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1646년(인조 24) 강빈옥사(姜嬪獄事)에 연루되어 파직, 고향에 내려가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 뒤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고성현감·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좌우통례(左右通禮)·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영해부사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승지로 경력(經歷)·참찬관(參贊官)·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겸하다가 노병(老病)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평시에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이며, 효제충신(孝悌忠信)은 도(道)라 하였으며, 성은 마음의 이치에서 구하는 것이며, 도는 몸이 마땅히 행할 바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항복하지 말고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