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치교(稚敎), 호는 분서(汾西). 경기도 통진(通津)에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박염(朴○)이고, 아버지는 박도현(朴道顯)이며, 어머니는 유해(柳楷)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벼슬길에 진출하였다. 1785년(정조 9)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당시 상소로써 “성학(聖學)에 힘써 정치의 근본을 세우고, 현상(賢相: 어진 재상)에게 맡겨 정치의 실효를 책임지게 하고, 안정된 계획을 내려 나라의 근본을 굳건히 하고, 관리에게 맡기는 것을 오래하여 여러 성적을 살피고, 학교를 돈독히 하여 선비의 풍습을 바르게 하고, 인재를 써서 어진 이의 길을 넓혀주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건의를 하였다.
1788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이듬해에는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를 지냈다. 1795년 부사직(副司直)으로 있을 때, 죄를 얻어 조적(朝籍: 국가 관리의 관직자의 명단을 기록한 문서)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고향으로 추방되었다가, 2년 뒤 노모가 있음으로 해서 특별히 사면되었다.
1799년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1801년(순조 1)에는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그 뒤 사학(邪學: 天主敎)을 앞장서 공격하고 정도를 지킨 공적을 인정받아 참판에 승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