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교(致敎), 호는 율암(栗庵).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현령 등 지방관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경기도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 우수 관리의 표창, 지방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 안동부사에서 영해부안검사(寧海府按檢使)가 되어 민란을 일으킨 이제발(李濟發) 등 민란관련자 38명을 처형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1874년에는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 일본사신 모리야마[森山茂]와 통상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은 운요호(雲揚號) 등 군함 3척을 부산에 파견하여 연습을 빙자, 위협하였다.
명성왕후(明成王后) 민씨(閔氏)의 인물로 그 뒤 충청도·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판서 및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