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중서(重瑞),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박성환(朴星煥), 어머니는 보성선씨(寶城宣氏)이다. 생각이 깊고 부지런하고 검소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재(理財)에 힘쓴 결과 부자란 소리를 당대에 들었다.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은 뒤엔 가난한 이웃에게로 눈을 돌렸다.
병자년(1876)에 큰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그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수백 개의 모래가마니를 쌓아 둑을 만들고 냇물을 가두어서 메마른 땅에 물을 대게 함으로써 흉년으로부터 마을을 구제하는 일을 실천하였다. 1888년 흉년 때는 곡식 50섬을 선뜻 희사하여 그 고을 빈민구제사업에 큰 힘을 보태었다.
1884년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란 벼슬을 받았다. 한편 「무농설(務農說)」을 지어 농사를 권장하였고, 「향약계서(鄕約契序)」와 「향약계안서(鄕約契案序)」를 지었다. 저서로 『송재집(松齋集)』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