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崔忠獻)의 누이의 아들이다.
1196년(명종 26) 대정(隊正)으로 있으면서 최충헌 형제를 도와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곧 별장(別將)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최충헌 형제와 모의하여 명종(明宗)을 폐위하고 신종(神宗)을 옹립하였다. 신종이 즉위한 직후에 형부시랑으로 승진하였으며, 최충헌·최충수(崔忠粹) 형제가 대립하자 최충헌을 지지함으로써 최충헌이 전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백 명의 문객(門客)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최충헌과 협력하였으나, 최충헌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자신의 문객들 가운데 관직을 얻은 사람이 적어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1201년(신종 4)에는 박진재가 최충헌을 없애려 한다는 익명서가 나붙어 두 사람 사이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그 뒤 1203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고, 다시 대장군에 올랐지만, 1207년에 최충헌에 의하여 백령진(白翎鎭)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