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문학, 우부승지, 광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동계(東溪)
  • 여후(汝厚)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704년(숙종 3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세자시강원문학|우부승지|광주부윤
  • 출생 연도1653년(효종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박태순 글씨 미디어 정보

박태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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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문학, 우부승지, 광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후(汝厚), 호는 동계(東溪). 할아버지는 대사헌 박황(朴潢)이며, 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 박세상(朴世相)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송시길(宋時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2년(숙종 8) 생원이 되고, 1684년 황감과(黃柑科)에서 장원급제하였으며, 1686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689년 홍문관에 등용되고, 2년 후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이 되었다. 1691년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내고, 이듬해 경주부윤(慶州府尹), 1695년 이후 광주부윤(廣州府尹)·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98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로 재직 중에, 허균(許筠)의 문집을 간행한 데 대한 전라도 유생들의 규탄으로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좌천되었다가 1703년(숙종 29) 복직,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695년 11월 광주부윤(廣州府尹) 재직시 성중에 있는 백제 시조 왕묘(王廟)의 묘정이 황폐되고, 그 담과 벽이 퇴락하였음을 보고 임금에게 건의하여 수명의 노비를 두어 이를 소제하게 하고, 군관(軍官)들로 하여금 이를 교대로 지키도록 하게 한 일이 있다.

저서로는 『동계집(東溪集)』 6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기사진신록(己巳搢紳錄)』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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