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후(汝厚), 호는 동계(東溪). 할아버지는 대사헌 박황(朴潢)이며, 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 박세상(朴世相)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송시길(宋時吉)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생원이 되고, 1684년 황감과(黃柑科)에서 장원급제하였으며, 1686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689년 홍문관에 등용되고, 2년 후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이 되었다. 1691년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내고, 이듬해 경주부윤(慶州府尹), 1695년 이후 광주부윤(廣州府尹)·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98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로 재직 중에, 허균(許筠)의 문집을 간행한 데 대한 전라도 유생들의 규탄으로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좌천되었다가 1703년(숙종 29) 복직,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695년 11월 광주부윤(廣州府尹) 재직시 성중에 있는 백제 시조 왕묘(王廟)의 묘정이 황폐되고, 그 담과 벽이 퇴락하였음을 보고 임금에게 건의하여 수명의 노비를 두어 이를 소제하게 하고, 군관(軍官)들로 하여금 이를 교대로 지키도록 하게 한 일이 있다.
저서로는 『동계집(東溪集)』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