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228㎝, 너비 105㎝, 두께 12㎝. 원래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반야사지에 있었던 것으로, 광복 후 해인사로 옮겨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1968년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에 중건하였다. 비는 귀부·비신·옥개석 모두 평박(平薄)한데, 귀부의 굳은 현상이나 간략하게 조형한 옥개석은 12세기 이후의 고려시대 탑비형식을 보인다.
원경왕사 낙진(樂眞)은 영통사(靈通寺)의 경덕국사(景德國師)·대각국사(大覺國師)를 사사하였다.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1) 승통(僧統)이 되었고 1114년(예종 9)에 오공통혜(悟空通慧)의 법호를 받았다. 왕사가 된 뒤에 귀법사(歸法寺)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124년 왕사의 문인 각순(覺純) 등이 비의 건립을 왕에게 청하자 1125년(인종 3)에 비가 건립되었다. 왕은 김부일(金富佾)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 글씨는 이원부(李元符)가 자경 2㎝의 해서로 썼는데, 고려시대 비문의 해서가 대부분 구양순(歐陽詢) 계통임에 비하여 우세남체(虞世南體)를 따르고 있다. 필획의 부드러운 흐름과 여유 있는 짜임새가 돋보인다. 비의 앞면 윗 부분에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어 있으며, 비의 뒷면에는 문도들의 직명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