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는 일찍이 상실되고 현재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이 남아 있다. 이수 높이 1.03m, 귀부 너비 1.61m.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제액이 있는데 ‘凝寥塔碑’가 2행, 행 2자씩 전서로 음각되어 있다.
귀부는 편마암으로 오랜 풍화작용에 의하여 세부의 조식을 판별하기는 어려운데, 당대에 일반화된 용두화(龍頭化)한 귀두(龜頭)가 아니라 귀두 그대로를 충실히 따랐으며 이수의 조형도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증각은 일명 홍척국사(洪陟國師) · 남한조사(南漢祖師)로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