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서옥 [서]
부수 玉 총획 13
성 [산] 역 이름 [산]
부수 山 총획 3
넓다 [보] 두루 [보]
부수 日 총획 12
생각하다 [원] 하고자하다 [원]
부수 頁 총획 19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터 [지]
부수 土 총획 7
법 [법] 본받다 [법]
부수 水 총획 8
도장 [인]
부수 卩 총획 6
나라 [국]
부수 囗 총획 11
선생님 [사] 어른 [사]
부수 巾 총획 10
탑 [탑] 절 [탑]
부수 土 총획 13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 명칭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2번지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401060000
- 위도36.7611609379064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김세호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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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터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법인국사 탄문의 탑비.
내용
이수의 상부에 용연(龍淵)을 파고 용이 사방에서 모이도록 한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법인국사 탄문(坦文)은 신라말·고려초의 명승으로 고씨(高氏)이며,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되었고 이듬해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 왕은 ‘법인(法印)’이라 추시(追諡 : 죽은 뒤에 시호를 추증함)하고 ‘보승(寶乘)’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한윤(韓允)이 썼으며, 김승렴(金承廉)의 각(刻)으로 세워졌다. 글씨는 2㎝ 정도의 구양순류(歐陽詢流) 해서로 필력과 짜임새가 구양순을 재현시킨 듯하다. 고려 초기에는 구양순체를 쓴 대가가 많았으나 그 중에서도 백미에 속한다.
참고문헌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권4
- 『朝鮮金石總覽』 上
- 『한국금석문대계』 2(조동원, 원광대학교출판국,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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