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귀부 높이 73㎝, 이수 높이 53.5㎝. 비신은 전하지 않고 2개의 비편만 남아있다. 작은 편은 국립춘천박물관, 큰 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인데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귀부와 이수만 선림원지에 있었으나 2008년에 비신을 새로 복원했다. 이수의 장식적인 운룡문이나 용두화한 귀두(龜頭) 및 비좌(碑座)의 안상(眼象) 등이 통일신라 말기 석비 양식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비의 주인공인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그는 서사(書史)에 해박하고 경전을 송독(誦讀)했으며 영산(靈山)을 두루 찾아 선석(禪席)마다 참석했다. 홍각선사는 수양이 깊어 문도(門徒)가 운집했다고 한다.
비문은 숭문관직학사 겸 병부낭중 김원(金薳)이 짓고 승 운철(雲澈)이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새겼으며 차성현령(車城縣令) 최경(崔瓊)이 전액(篆額)을 써, 886년에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수 중앙에 제액은 '홍각선사비명이 2행 행 3자씩 독특한 전서로 양각되어있다. 글씨는 2㎝ 정도의 행서로 당(唐)나라 회인(懷仁)이 집자한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에서 뽑은 것임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왕희지의 글씨가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