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교주 차경석(車京石)은 늘어나는 신도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24방주 제도를 도입, 주요 간부 24명을 임명하여 이들을 방주라 불렀다.
1919년에는 이 조직을 더욱 확대시켜 최고 방주 60명에서 말단에 이르는 조직체계를 만들었다. 같은 해 10월 그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대황산 아래 있는 덕암리 서만식(徐萬植)의 집 후원에 제단을 쌓고 치성을 행한 뒤 역서식(歷書式)에 의거한 60방주의 간부를 임명하였다.
60방주는 금·목·수·화(金木水火) 4방주, 동·서·남·북 4방주, 춘·하·추·동 4방주, 24포주(胞主: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甲乙丙丁庚辛壬癸乾坤艮巽), 그리고 24운주(運主:冬至 小寒 大寒 立春 雨水 驚蟄 春分 淸明 穀雨 立夏 小滿 芒種 夏至 小暑 大暑 立秋 處暑 白露 秋分 寒露 霜降 立冬 小雪 大雪) 등이다.
이와 같이 60명의 방주를 임명하고 이들에게는 각 방면(方面)을 새긴 상아방인(象牙方印)과 방철(方鐵), 즉 선추(扇錘)를 주었다.
금·목·수·화에는 방인원철(方印圓鐵)을, 동·서·남·북에는 원인방철(圓印方鐵)을, 춘·하·추·동에는 방인원철을, 24포주에는 원인방철을, 24운주에는 방인원철을 주었다.
그리고 그 하부조직으로 각 방주마다 대리(代理) 1명과 육임(六任)을 조직하게 하니 대리의 명칭은 금·목·수·화에는 사(司), 동북은 수(守), 서·남은 교(交), 춘·하·추·동은 섭(攝), 24포에는 포감(胞監), 24운은 운독(運督)이라 부르고, 육임은 경례(敬禮)·교무(敎務)·절의(節義)·집리(執理)·찰이(察異)·행신(行信)이라 부르게 하여 각각 교첩(敎帖)과 상아직인(象牙職印)을 주었다.
육임의 하부조직으로 십이임(十二任)을 조직하여 방인(方印)으로 임첩(任帖)을 주니 그 임첩의 내용은 흥사(興思)·소청(掃淸)·수정(需淨)·근업(勤業)·관서(寬恕)·과사(寡斜)·추양(推讓)·징위(徵危)·계단(稽斷)·순행(詢行)·반환(叛還)·훼부(毁復) 등이었다. 또 십이임의 밑으로는 팔임(八任)을 조직하고 팔임 밑에 다시 십오임(十五任)을 지명하여 조직하였다.
따라서 이 조직에 포함된 간부의 수는 방주 60명, 대리 60명, 육임 360명, 십이임 4,320명, 팔임 3만 4,560명, 십오임 51만 8,400명, 합계 55만 7,760명이었다. 이와 같은 숫자의 간부들을 임명하여 차경석은 많은 신도들을 효율적으로 통할하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