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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연극이나 영화 등의 등장 인물로 분장하여 배역에 맞는 연기를 하는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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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연극이나 영화 등의 등장 인물로 분장하여 배역에 맞는 연기를 하는 예술인.
내용

전자는 영화배우를, 후자는 연극배우를 일컫는다. 영화배우의 출현은 영화가 발생되었던 1895년 이후의 일로서 사실상 직업적 의미에서 영화사에 등장한 것은 1905년 전후부터이다.

연극배우와 마찬가지로 관객과 의사소통하는 작중인물로서 대사와 신체적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러나 연극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실연하나 영화배우는 스크린에 투사되는 매개체를 통해서, 즉 영상(映像)으로서 전달된다.

영화배우의 연기는 카메라에 의해서 신체의 전부 또는 필요한 부분이 쇼트(shot)로 촬영되어서 공간적·시간적 제약 없이 몽타주(montage)된다. 전달방법도 연극이 일회적(一回的)으로 무대에 고정되는 것과 달리 영화는 많은 복제(複製) 프린트를 통해서 지역적(地域的)·시간적 제한이 없이 상영된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배우를 스타로서 대중사회의 우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름에 기록된 영화배우는 그가 죽은 뒤에도 생생하게 재현된다. 이러한 기록성(記錄性)으로 인해서 영화배우는 당대의 개인적·집단적인 사상과 정서 및 사회적 풍속과 관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그 문화사적 가치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배우가 출현한 것은 1920년대부터로, 1923년에 제작, 발표된 「월하(月下)의 맹세(盟誓)」에 출연하였던 이월화(李月華)와 권일청(權日晴) 등이 선구자이며, 이어서 안종화(安鍾和)·이채전(李彩田)·나운규(羅雲奎)·복혜숙(卜惠淑) 등이 뒤를 이어 민중적 스타로서 확고한 명성을 지니게 되었다.

초창기의 한국영화는 당시 유교적인 윤리와 가족제도(家族制度) 때문에 여배우를 얻기가 어려웠으므로 광무대(光武臺) 등 무대의 창기(娼妓)와 권번기생(券番妓生)들을 뽑아 출연시키는 일도 많았다. 신문화(新文化) 개화기의 영화는 대중적인 오락적·예술적 매체로 이 땅에 정착하는 한 과도기적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한국영화는 1년에 불과 10편 미만의 빈한한 제작이었으므로 영화배우는 거의 직업적인 보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혹독한 일제의 탄압과 가난을 강인한 예술의욕으로서 극복하면서 한국영화의 명맥과 성장에 이바지하였고 스크린을 통해서 민중과의 민족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개화기 이전의 우리나라 연극은 극작가가 없는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연극배우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자율성과 즉흥성이 많이 주어져 왔다. 관중에게 무대를 가장 가깝게 인격화하는 연극배우는 자기의 몸과 음성을 창조된 인물에 바쳐 그로 하여금 살아 숨쉬게 한다.

기본적인 표현수단이 자기자신과 분리되지 않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심리적·지적 자질로부터 자신의 육체와 음성을 사용해 창조한다. 따라서 배우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요소, 즉 천부적 재능·훈련·실습을 갖추어야 한다. 배우는 예술인으로서 스스로 창조하여야 하므로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어야 하며, 그 위에 많은 훈련과 끊임없는 실습을 통하여 살찌우고 발전시켜야 한다.

연극배우의 육체와 음성은 관객과 의사소통을 하는 일차적 수단이므로 탄력적이어야 하며, 훈련되어야 하며 또한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배우는 탄력성이 있어야 넓은 범위의 태도·특성·정서 및 상황을 육체적으로나 음성으로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배우는 이해·실습 및 훈련을 통해서 조절력을 가져야만 하며, 특히 상상력과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실제 상황이 아닌 허구의 상황에 관계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상상의 환경 속에 투사하고 그 환경을 스스로 믿도록 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배우의 첫번째 임무는 신체·음성·심리적 태도 및 충동·상상력 및 관찰력에 관계된 기본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배우는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4세기 중엽의 안악 3호분의 탈꾼과 같은 놀이꾼이 등장하고, 7세기경에는 백제의 기악(伎樂)이 일본에 전해지며, 9세기의 신라에서는 오기(五伎)와 같은 놀이가 성행했던 것으로 직업적 배우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직업배우를 광대(廣大)로 불렀으며 전국적으로 많이 있었다. 그러한 전통이 개화기까지 내려와 신극이 시작되면서 서양과 같은 개념의 배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는 탈꾼·소리꾼과 같은 전통적인 배우와 더불어 현대극의 연극·영화 배우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연극사』(이두현, 학연사, 1982)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삼애사, 1969)
『신배우술』(한재수, 한일출판사, 1967)
『영화제작의 실제』(Kuleshov, L., 袋一平 譯, 三笠書房, 1958)
The Theatre(Oscar, G., Brockett,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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