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보부상단(褓負商團)의 시조(始祖)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보부상(褓負商)이라 불리는 행상(行商)의 기원(起源)은 이미 고대 사회에서 비롯되었지만, 전국적인 상인 단체로 조직된 것은 조선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즉, 조선 건국 때 부상 단체인 부상청(負商廳)의 첫 5도도반수(五道都班首)가 바로 백달원이다.
몇 가지 전설에 따르면 백달원이 이성계(李成桂)의 건국 창업에 충성을 다해 그 대가로 부상청이 설치되었다 한다. 즉, 이성계가 건국 전 함경도 만호(萬戶)로 있을 때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적이 쏜 화살에 머리를 맞고 적병들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마침 황해도 토산군(兎山郡)에 거주하던 백달원이 죽립(竹笠)을 쓰고 지게를 짊어지고 가다가 이를 보고 지게에 싣고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태조는 즉위 뒤 백달원의 소원에 따라 소자본인 8도 행상인을 구제할 목적으로 각 주(州)·군(郡)에 임방(任房)을 설치하게 하고, 침식, 질병의 치료, 장의(葬儀) 등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는 태조가 즉위 뒤 안변에서 석왕사(釋王寺)를 증축할 때 백달원이 동료 80인을 인솔해 자재와 식량을 운반하고, 또 삼척군에 있는 500나한(羅漢)을 이안(移安: 안전하게 옮겨줌)해주었기에 태조가 그 공로를 가상히 여겨 개성 발가산(發佳山)에 임방을 두고 옥도장을 하사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전설들로 미루어보아 조선 초기 부상단의 창설은 바로 백달원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