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무사는 백두산의 무사를 의미한다. 이 단은 임강현 모아산(帽兒山)에 근거를 두고, 1921년 5월에 조직되었다. 각 지방에 조직망을 펴 6,000여 명의 단원을 확보한 만주 내의 가장 대규모의 독립운동단체였다.
간부진은 단장 이두성(李斗星), 총무 김보환(金寶煥), 서기 김성진(金成晉), 내무 이영빈(李永彬), 통신원 김득종(金得宗)이었다. 조직으로 5부를 두어 재무·경호·통신·외무 등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제1부 부장은 알 수 없으나 재무는 김시우(金時禹)였고, 상해임시정부의 명에 의해 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라 칭해졌다.
제2부는 부장 임선화(任善化), 이사원 최정(崔貞), 경호원 김정삼(金貞三), 서기 김준삼(金俊三), 통신원 조성록(趙成祿), 외무원 김석춘(金石春)·강진석(康晉錫)이었고, 제3부는 부장 남기락(南基洛), 이사원 김종주(金宗柱)였으며, 제4·5부는 알 수 없다.
전투부대인 독판부(督辦府)는 독립군을 편성해 만주와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구성원은 대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출신으로 활동범위도 평양·순천 등지였다. 강진석은 평양 등지에서, 유경운(柳璟雲) 등은 순천 등지에서 지단을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김예진(金禮鎭)·이춘성(李春成)은 주로 상해(上海)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4월 평양에서 활동 중이던 강진석, 신훤(申楦)·신근(申槿) 형제와 그 어머니 이경임(李敬妊), 아내 유사로(兪似老), 이정선(李丁善)과 황용호(黃龍浩)가 조선총독부경찰에 잡혔다. 그 뒤 이두성 등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참의부(參議府)·의용군(義勇軍)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