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호상(白衣好尙)의 전통을 이어 왔기에 백의민족이라 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와 근대에 더 뚜렷해지는 경향을 띠었지만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며, 빛을 숭상하고 태양을 숭배하는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의 영향이 크다.
고대 한민족의 백의를 숭상하는 풍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 사서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는데,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수서(隋書)』에도 ‘신라 사람들은 옷의 색깔로 흰 옷을 숭상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풍습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반포되었던 흰옷 금지령과 각종 사료, 초상화와 같은 회화 작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한민족의 정신 세계와 문화 양식을 지배했던 유교(儒敎)는 감각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멀리하면서 인격과 형식, 규범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상이었는데, 그 중 금채색(禁彩色) 사상은 색(色)을 욕망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형(形)의 크고 작음이 어디에 있고 색(色)의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는 불교(佛敎) 사상과 무위(無爲)는 ‘나를 찾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며, ‘비움은 곧 그득함’이라 하였던 도교(道敎) 사상 역시 한민족의 복식 문화에 비움과 절제의 미적 가치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삼교(三敎)의 사상은 오랜 세월 공존하면서 서로 절충되어 유사성을 띠게 되었는데, 한민족의 흰옷 선호에는 비움과 절제의 미학이나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한국 전통 미학에 영향을 미친 이러한 종교 사상들을 토대로 한민족은 순수함과 본연적인 것, 비(非)장식적인 것, 즉 색채와 인공적인 형을 배제한 순수미를 추구하였으며, 백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말하는 소색(素色)까지도 백색으로 불렀다. 이 소색은 무색(無色)의 개념으로, 인공적으로 염색하거나 현대적인 표백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명이나 삼베 등의 고유한 색을 말한다. 따라서 한국의 백의는 아주 밝은 미색부터 담갈색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국인의 전통 백의는 평민들의 일상복은 물론, 양반들의 평거복과 학자복, 종교 의례에서 사제나 참여자가 착용하는 종교복, 제례복, 상복(喪服)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1123년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왕은 평상시에는 검정 두건에 흰 모시 도포(道袍)를 입으므로 백성과 다를 바 없다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수의 사료(史料)와 그림들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의 양반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편복(便服)으로서의 도포(道袍), 학자의 법복(法服)인 심의(深衣) 등은 물론 관리가 일할 때 입는 시복(時服)까지도 흰색으로 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상류층의 경우 계급의 표현이나 직무 수행에 따라 색이 있는 옷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나, 일상적으로는 흰옷을 주로 입었다.
한민족의 백의호상 전통은 일제의 식민 사학자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왜곡되었는데, 그들은 ‘염채(鹽菜) 기술의 낙후’, ‘경제적인 궁핍’, ‘국가적인 복색 통제’, ‘슬픔의 민족’, ‘상복의 일상화’ 등이 한민족이 백의를 착용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하여 유창선(劉昌宣)은 1934년 「백의고(白衣考)」를 통하여 반론하였는데, ‘일찍부터 여러 가지의 염료를 사용해 온 조선이 백의호상의 원인이 없었으면 단조한 의료(衣料)를 입었을 리가 없다.’, ‘염료대(染料代)가 들지 않아 백의를 입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백의는 비경제적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색의장려운동(色衣獎勵運動)이 유행하지 않았는가?’, ‘국가의 금령만 본다면 백의는 도리어 더욱 자주 금지되어 왔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백의호상이 우리의 민족적 상징이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선 민족의 민족성 곧, 종교심과 결백성은 우리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흰옷을 좋아하는 습관을 만들고 그리하여 그 습관은 길이길이 이 민족의 풍속이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일제에 항거하는 상징으로 백의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제는 강압적으로 조선인의 백의 착용을 탄압하였는데, 흰옷을 착용한 사람에게 행정상 불이익을 주고 관공서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장날 흰옷 착용자에게 먹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계급 사회의 해체와 서구 복식의 확산으로 백의 착용 문화가 빠르게 사라져 갔으나, 흰색 한복에 내재된 저항과 결백의 상징성으로 인하여 일부 사회 저항적 집단이 착용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