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긍첨(兢瞻), 호는 지산(止山). 백일영(白日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백선양(白善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 백경해(白慶楷)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통덕랑(通德郎) 윤득서(尹得瑞)의 딸이다. 김익환(金益煥)에게 수학하였다.
어려서는 백부 백경한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13살 때부터 연곡(蓮谷) 김익환(金益煥)에게 수학하였다. 1831년(순조 3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상경하자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이듬해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에 임명되었고, 1835년(헌종 1) 출륙(出六: 올라가기 힘든 6품직에 오른 것을 일컬음)되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승진되었다.
그 뒤 예조정랑·사직서영(社稷署令)·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병조정랑 등을 거쳐 1839년 문천군수(文川郡守)가 되었다. 1846년 중앙으로 돌아와 다시 병조정랑 등을 거쳐 1855년(철종 6)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가 되었고, 1861년 통정대부에 승자(陞資: 품계가 오름)되어 부호군(副護軍)이 되고 병조참지를 거쳐 병조참의에 승진되었다. 1862년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철종이 전국에 대책(對策)을 구하였는데, 백종걸의 책문이 뽑혀 『규장전운(奎章全韻)』 1부를 하사받았다.
1868년(고종 5) 우부승지가 되었다가 사직,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시문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지산문집(止山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