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 본관은 해미(海美). 옥봉(玉峯)광훈(光勳)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세에 사학(四學)의 과시(課試)에서 시·부(詩賦)로 뛰어나 이이(李珥)의 사랑을 받았고, 정유재란 때에는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진중에 피란하였는데, 그 당시 명나라 장수 계금피(季金皮)·승덕(承德) 등은 그의 시초(詩草)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관반(館伴 : 서울에 묵고 있는 외국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일시로 임명한 정삼품벼슬) 유근(柳根)의 천거로 백의종사(白衣從事)하였다.
문장과 필법으로 유명한 지번이 진남의 묵적(墨蹟)을 절찬하며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지번도 ‘玉峯書室(옥봉서실)’·‘玉洞煙霞(옥동연하)’ 8자와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를 써주었다.
그는 평소에 김상헌(金尙憲)·조희일(趙希逸)과 서로 좋아하여, 서울집을 그 이웃인 백악(白嶽) 아래에 두었다. 별서(別墅)를 송호(松湖)에 꾸미고 55세에 죽었다. 저서로는 『송호유고』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