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동 송련리 유적

  • 역사
  • 유적
  • 청동기
북한 평안북도 벽동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반월형장방형석도·돌낫·석부 등이 출토된 집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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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북도 벽동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반월형장방형석도·돌낫·석부 등이 출토된 집터.

내용

송련리를 지나는 압록강안의 나지막한 구릉의 북쪽 경사면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서 파괴된 집터와 함께 토기 · 석기 등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집터는 홍수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되고 서쪽 벽만이 완전히 남아 있었다. 동서의 길이가 4m이고 북벽이 1.5m, 남벽이 1m 정도만 남아 있었다. 집터바닥은 진흙을 발라 구어 단단히 다졌다. 기둥구멍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기둥을 깊이 파지 않고 바로 바닥 위에 세운 집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집터와 집터 주변에서 출토되었는데 모두 같은 성격의 것이다. 출토된 토기는 바탕흙[胎土]에 할석과 모래를 섞어 표면이 매끄러운 민무늬토기[無文土器]로 대상(帶狀)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석기(石器)는 숫돌과 석촉(石鏃), 석부(石斧: 돌도끼), 환상석부(環狀石斧), 대패날석도(石刀), 그물추 등이 수집되었다. 석촉은 점판암(粘板岩)으로 만든 것으로 단면이 편육각형의 뿌리가 없는 밑부분이 안으로 들어간 형태이다.

석부는 석회암(石灰岩)으로 만든 것이고 단면이 장방형인 장방형석부로 날은 비뚠날[斜刀]과 조개날[蛤刀]이 있다. 환상석부는 편암(片岩)으로 만든 것으로 깨져 있었고 한쪽 면 중심부에는 턱이 져 있다.

대팻날은 섬록암으로 만든 것으로 전면이 정교하게 마연되었고 외날[單刀]이다. 석도는 점판암으로 만든 것으로 반월형(半月形)과 장방형이 있다. 전자에는 등이 굽고 날이 곧은 빗모양[櫛形]으로 구멍이 없는 것과 한쪽 끝에 구멍 하나가 뚫린 것이 있다. 낫은 새주둥이 형태의 것으로 한쪽 등과 아래에 끈을 맬 수 있게 홈을 팠다.

의의와 평가

이상 수집된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강계 공귀리 유적· 시중 심귀리 유적 등의 압록강 중상류의 청동기시대 유적들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반월형석도(반달돌칼) · 장방형석도, 돌낫과 석부 등으로 미뤄볼 때, 당시 송련리 선사시대인은 농업위주의 생활을 하였으며, 석촉과 그물추를 이용해 사냥과 물고기잡이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평안북도 벽동군 송련리와 룡천군 왕산 원시유적 답사보고」(정일섭, 『문화유산』1962년 1호, 과학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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