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5m. 1520년(중종 15)경 벽송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되었다고 생각되며 우리 나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한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표에 넓은 지복석(地覆石 : 지대 맨 밑에 가로놓은 돌)을 깔고 그 가운데에 높은 지대석(地臺石)을 마련한 뒤 그위에 중석(中石)을 얹었는데, 중석 하단에 1단의 얕은 턱을 둔 것은 실상사삼층석탑(實相寺三層石塔)과 같은 양식이지만 이것이 지대석을 표현한 듯이 보여 양식상의 혼란이 있다.
중석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각 면 1주씩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표현되었다. 갑석(甲石)은 폭이 좁아서 중석 하단의 턱이 폭과 같으며, 위는 경사진 가운데 1단의 굄이 있으며 약간의 반전(反轉)이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각 면 1매의 판석으로 구성하고, 각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씩이 모각(模刻)되었다.
갑석은 1매석인데 밑에는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위에는 역시 모퉁이에 반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고 각 층 옥신석에는 우주가 있을 뿐 장엄조각은 없다. 옥개석은 초층과 2층에 4단, 3층에 3단의 받침이 있고 낙수면 모퉁이에서는 심한 반전을 보인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과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탑의 건립위치가 법당 앞이 아니고 후면의 언덕 위라는 점은 탑파 건립의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고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