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황주(黃州). 자는 자여(子餘), 호는 자하(紫霞). 변처정(邊處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택(邊澤)이고,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변이중(邊以中)이며, 어머니는 오인준(吳仁俊)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교서관저작(校書館著作)으로서 편당(偏黨)에 따른 기강과 형정(刑政)의 문란, 사습(士習)·공도(公道)의 어지러움, 국가재정·민생의 파탄 등 시폐를 논하고 이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또 이산해(李山海)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던 유영경(柳永慶)을 몰아낸 처사를 들어 이산해·이경전(李慶全) 부자와 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大北派)를 극렬히 비판하다 파직당하였다. 이어서 1618년에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사건을 주동한 병조판서 유희분(柳希奮)에게 대의(大義)를 논하는 글을 전하였다가 가산을 적몰당하였다. 전라도 장성의 봉암서원(鳳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