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사눌(士訥). 증 판결사 변충남(卞忠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경수(卞景壽)이고, 아버지는 희릉참봉 변유청(卞惟淸)이며, 어머니는 부호군(副護軍) 신옥(申沃)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청주 비홍리(飛鴻里)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온 가족이 피난하였는데, 그의 대처가 뛰어나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로 글공부에 뜻을 잃고 『손자』와 『오자』 같은 병법서를 탐독하였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버지가 죽자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1616년(광해군 8) 당포만호(唐浦萬戶)로 첫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 뒤 1626년 경흥부사(慶興府使)·낙안군수(樂安郡守)를 거쳐, 1632년 남원영장(南原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뜻을 이루려는 의지가 비범하여 알고자 하는 것은 그 바탕까지 파고 들었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고 직사(職事)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며, 일을 덜어서 손쉽게 하므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자는 고관요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바른 말로써 이를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