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柳致眞)이 쓴 계몽사극.
1948년에 ≪평화신문≫에 연재된 뒤 시공관무대에 올려졌던 5막희곡이다. 이 작품은 <자명고>·<원술랑> 등과 함께 역사를 빌려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정통적인 낭만사극이다.
이 희곡은 ‘아버지의 붕당싸움에 희생된 정도령과 구슬아기의 슬픈 이야기’라는 작가의 작품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의 격렬했던 당파싸움을 빌려 광복 직후의 혼란스런 정치·사회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즉, 권력을 향한 음모·모함·암살 등 조선시대 관정사의 이면을 작품화한 희곡으로서, 추악한 정치이면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모의 명수인 한 세도가 정판서에 의해서 다른 세력인 김판서가 무참하게 몰락하는 이야기로 짜여져 있으며, 작품의 무대도 김판서의 아내와 딸 구슬아기가 숨어사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세도가 정판서의 아들 정도령은 당파싸움을 혐오하는 화평주의자이자, 자기 아버지에게 희생된 김판서의 딸 구슬아기를 사랑하고 동정한다.
가련한 구슬아기에 대한 동정과 사랑은 결국 정도령으로 하여금 권력에 대한 증오와 저항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원수인 정도령의 아버지에게 복수하러 잠입해 들어갔던 구슬아기 또한 정도령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복수도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결국 두 남녀의 정사로써 끝을 맺고 만다는 애화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역사극이면서도 작자의 다른 역사극들과는 달리 어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순수허구적 작품이라는 특색을 지닌다. 사건도 그렇고 주인공도 실재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집안의 남녀의 사랑에 중점을 둔 점에서 낭만성과 통속성이 짙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추구한 것은 좌우익으로 분열되어 피투성이 파벌싸움을 벌인 광복 직후의 혼란된 사회상의 풍자였다. 즉, 역사(허구)를 빌려 현실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그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며, 계몽주의적 성향이 짙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