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오래 [장] 멀다 [장]
부수 長 총획 8
일어나다 [흥] 기뻐하다 [흥]
부수 臼 총획 15
옥새 [보] 중하게 여기다 [보]
부수 宀 총획 20
수풀 [림] 야외 [림]
부수 木 총획 8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넓다 [보] 두루 [보]
부수 日 총획 12
비추다 [조] 환히비추다 [조]
부수 火 총획 13
터닦다 [선]
부수 示 총획 17
선생님 [사] 어른 [사]
부수 巾 총획 10
탑 [탑] 절 [탑]
부수 土 총획 13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 이칭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
- 명칭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長興 寶林寺 普照禪師塔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1번지 보림사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601580000
- 위도34.808260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김응현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정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보조선사 지선의 탑비.
내용
비문은 김영(金穎)이 짓고, 글씨는 김원(金薳)과 김언경(金彦卿)이 썼는데, 첫 줄에서 일곱 번째 줄의 ‘선(禪)’자까지는 해서(楷書)로 김원이 썼고 ‘사(師)’자 이하는 행서(行書)로 김언경이 썼다. 이것은 아마도 김원이 중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였던 김언경이 이어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일찍이 청(淸) 말기의 금석연구가 섭창치(葉昌熾)는 이 비에 대하여 그의 저서 『어석(語石)』에서 “일비양인서일칙(一碑兩人書一則)”이라고 평한 바 있다.
비신을 받고 있는 귀부는 얼굴이 용두(龍頭)처럼 변하였으며, 이목구비의 조각이 뚜렷하여 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 등 뒤에는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이 등 전체를 덮고 있으며, 등 가운데 구름문과 연꽃을 돌린 비좌(碑座)를 설치하여 비신을 받게 하였다. 이수는 아래에 구름문을 조각하고 비제의 좌우에 대칭적으로 반룡(蟠龍 : 승천하지 않은 용)을 조각하였는데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비는 9세기 말경의 석비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한국의 미』15 석등·부도·비(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83)
-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 國書刊行會,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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