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화는 1649년(인조27)에 조성된 감로도(甘露圖)로 수륙재(水陸齋)·칠칠재(七七齋)·우란분재(盂蘭盆齋) 등의 영혼천도 의식에 쓰였으며 망자(亡者)의 극락왕생을 위한 신앙 내용을 그렸다.
원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락산(眞樂山)보석사(寶石寺)에 봉안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로 238㎝, 가로 228㎝의 크기에 아홉 폭의 삼베를 이은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화면은 상·중·하로 구분되었는데 상단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한 칠여래(七如來)와 관음(觀音)· 대세지(大勢至)보살이 배치되었고, 중앙에는 시식단(施食壇)과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아귀(餓鬼), 그 옆으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있다. 하단부에는 천도(遷度)할 대상과 현실세계의 갖가지 장면이 펼쳐진다.
화면 중앙의 재단(齋壇)에는 각종 음식과 꽃, 지전 등 다양한 공양물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재단은 불·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물을 놓기 위한 불단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감로로 바뀐 음식을 영혼에게 베풀기 위한 시식단(施食壇)이다. 특이한 점은 이 재단이 실제로 차려진 제사 상이 아니라 병풍처럼 간편하게 접었다 펼 수 있는 걸개그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안에 그려진 내용물은 실제의 과일과 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시식단 앞의 쌍아귀는 천도 받아야 할 영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귀의 앞으로 이 의식의 증명(證明)을 맡은 승려가 시식의례를 진행하고 있다. 양손에 버드나무가지와 수반(水盤)을 든 승려의 모습은 의식집에서 설하는 의식의 진행양상을 보여준다는 연구도 있다.
시식단 위쪽에는 도량(道場)에 강림한 듯한 칠여래가 있어 영혼의 구제를 맡고 있는데 가운데 있는 도상(圖像)이 아미타불로 보여진다. 시식단 좌측으로 긴 당(幢)을 잡고 천의(天衣)를 휘날리는 인로왕보살이 망자의 구제를 위해 하단의 중생을 바라보며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상단의 불·보살로 인도하고 있다.
하단에는 중첩된 구름과 산을 경계로 하여 많은 내용이 표현되었다. 선왕(先王)·왕후(王侯)·장상(將相)·승니(僧尼)·서민·재인(才人) 등 여러 인물군이 오색 구름 선으로 구획된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차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산악을 배경으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 호랑이에게 물리는 장면, 감옥에 갇혀 형벌을 받는 장면 등 현실 속 갖가지 제난(諸難)장면을 묘사하였다. 이 가운데 전쟁장면은 보석사 감로도 하단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보석사가 위치한 금산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호남지방 진출을 저지한 중요한 항쟁지인 금산전투가 일어났던 곳이었으므로 이런 내용을 감로도에 표현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감로도의 도상은 망자가 죽을 무렵에 겪었을 수많은 죽음을 묘사하고 그 서글픈 한을 풀어 주려는 의도가 있다. 특히 보석사의 감로도는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결집한 의승군들의 천도를 위해 조성되었을 것이다.
상·중·하단의 구도로 나누어 도상을 배치하였고 붉은색과 녹색(綠色)을 주조색으로 채색하였는데 호분(胡粉)이 섞인 안료를 군데군데 사용하여 채도가 낮은 분홍색이나 하늘빛의 파스텔톤 색을 만들었으며, 이는 화면이 온화하고 부드럽게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하단의 장면 장면은 구름과 산악을 경계로 하여 특징적인 도상을 배치하였다. 중단의 단은 이른바 ‘그림 속의 그림’으로 병풍처럼 장막에 과일과 쌀, 꽃, 향 등의 공양물을 배치한 것도 이 불화의 특징적인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시대 감로도 70여 점 가운데 이른 시기의 도상을 보여주는 감로도로서 17세기 감로도의 도상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임진왜란 시 일본군의 호남지방 진출을 저지한 중요한 항쟁지인 금산전투가 일어났던 금산지역에 위치한 보석사에서 당시 의승군들의 위무와 천도를 위해 조성되었던 감로도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