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경종 4년) 제작.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199㎝, 가로 286㎝ 이다. 원래 경상북도 김천시 직지사에 봉안되었으나 현재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감로도는 시왕도(十王圖)와 더불어 49재(齋)·백일재(百日齋) 혹은 망자(亡者)의 기일(忌日)에 많이 쓰이는 하단 탱화(下壇幀畫)였다.
화면 하단(下段)의 육도 중생(六道衆生)이 중단의 감로(甘露) 시식 의례(施食儀禮)를 거쳐 상단의 불·보살의 세계로 인도되는 삼단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감로도는 고혼(孤魂)이나 아귀(餓鬼)에게 ‘감로’라는 음식을 베풀어 구제한다는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焰口軌儀經)』 등의 밀교 경전류와, 시아귀(施餓鬼)의 내용이면서 조상 숭배가 강조된 『우란분경(盂蘭盆經)』과 같은 위경(僞經)에 근거한다.
화면의 상단에는 7보살과 백의관음·세지보살이 시립하였다. 향우(向右) 극락보전 앞에는 부용지(芙蓉池)에 이제 막 연화 화생(蓮華化生 : 연꽃 속에 나서 지혜와 광명과 몸이 모두 보살과 같이 되는 왕생)한 두 동자가 아미타불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감로탱에서 극락보전과 연화 화생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화면의 정 중앙 재단(齋壇)이 생략된 자리에는 아귀가 지장보살에게 합장을 하고 있다. 아귀의 뒤로는 무수히 많은 작은 아귀가 수묵(水墨)의 실루엣(silhouette)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망령(亡靈)들이 감로를 청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귀의 향우(向右)에는 인로왕보살이 번(幡 : 깃대) 끝을 아래로 향한 채 중생을 향해 하강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연녹색 바탕의 넓은 공간에 구획선 없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의 우측에는 선왕(先王)·천녀(天女)·장상(將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화면의 좌측에는 흐트러진 자세로 『맹자(孟子)』를 읽는 유학자의 모습, 입을 앙다물고 어렵게 수행하는 도사(道士)들이 그려져 있다.
그 외 하단에는 재인(才人)들이 비파와 대금, 장고를 치며 연희에 열중인 모습 및 망자의 생전 모습을 여러 장면들로 유형화하여 표현하였다. 하단 우측에는 해전(海戰)과 육지전(陸地戰)의 상황을 매우 큰 공간에 그렸다. 이는 전쟁에서 죽은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이 감로탱 제작에 큰 동기가 된 것으로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