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54㎝, 가로 194㎝. 하단에는 고혼(孤魂)의 생전 모습으로 주로 환난을 입는 장면, 중단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그린 의식 장면이 있다.
그리고 상단은 감로(甘露)라는 상징적 매개물을 통하여 고혼이 된 인간이 악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불·보살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18세기 이후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상(六道相)이 더욱 세분화되어 전 시대에 없었던 여러 가지 장면이 추가되고 더욱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전형을 보여 주는 수작이다. 화기(畫記)가 없으나 18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상단에는 6불과 아미타삼존·지장보살·인로왕보살이 있다. 그리고 청혼(請魂)을 태울 벽련대좌를 받쳐든 천인(天人)·주악천인(奏樂天人)의 무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중앙에는 재단(齋壇)이 생략된 채 화염 속에 싸인 두 아귀가 고통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불·보살의 자비가 올 때까지 빈 발우(鉢盂 : 절에서 쓰는 중의 공양 그릇, 바리때)를 입으로 깨물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향우(向右)에는 상단의 아미타불이 보낸 듯 합장을 한 존자가 다가오고 있다. 배경은 수묵 기법으로 그린 산야의 모습인데, 자연스럽게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인물의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사용하여 선명히 두드러진다.
중앙의 아귀를 에워싸고 역대 제왕과 후비·고관·도사·승니(僧尼)·일반 서민 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주변에 있다. 그리고 하단의 제상(諸相)과 함께 지옥도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하단에 표현된 인간 제상은 태어나다 죽기도 하고 형벌을 받거나 전쟁을 하다가 죽기도 하였던 망자(亡者)의 임종 모습들이 묘사되었다. 이 그림은 그러한 죽음을 당했던 망자의 영혼 천도를 위해 기능을 하는 것이다.
18세기 감로탱에서 의겸(義謙)의 감로탱과 함께 이 작품과 같은 양식은 또 하나의 유행을 이루었다. 그리고 양식적으로 여수 흥국사감로탱(興國寺甘露幀, 1741년 작), 양산 통도사감로탱(通度寺甘露幀, 1786년 작), 영천 은해사감로탱(銀海寺甘露幀, 1792년 작) 등과 유사하여 화사(畫師)간의 관계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