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1년(인종 20) 건립. 비신높이 2m, 너비 1.1m. 부석(趺石) 위에 세워져 있는데, 김부식(金富軾)이 비문을 짓고 문공유(文公裕)가 글씨를 썼다.
자경(字徑) 2.7㎝ 정도의 행서(行書)로서, 활달한 운필은 「문수원중수비( 文殊院重修碑)」를 쓴 탄연(坦然)과 일맥을 이룬다. 비신 상단에는 ‘妙香山普賢寺之記(묘향산보현사지기)’라는 인종의 친필행서가 있는데, 서풍(書風)이 탄연과 비슷하다.
비문에 의하면 보현사는 탐밀(探密)·굉확(宏廓) 등 두 명승이 전후하여 창건한 절로서, 탐밀의 성은 김씨로 25세에 출가하여 명사(名師)로부터 화엄의 교관(敎觀)을 전해받고 1028년(현종 19)에 연주산(延州山)에 들어가 절을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또 굉확은 탐밀의 조카로 탐밀의 제자가 된 뒤, 5년 지나 동남쪽 모퉁이에 택지하여 243칸의 정사(精舍)를 짓고 산명을 ‘묘향(妙香)’, 사명(寺名)을 ‘보현(普賢)’이라 하고 불법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그 뒤 두 승려의 제자들이 대를 이어 주지직을 맡았는데, 문종이 이를 가상히 여겨 1067년(문종 21) 전지(田地)를 내리고, 만약 주지직이 비게 되면 문인 중에서 조사(祖師)의 뜻을 이을 자를 뽑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이에 성각(性覺) 등 문인들이 이를 길이 전하고자 건립한 것이다.
비의 음기(陰記 : 비의 등 뒤에 새긴 글)에는 두 승려의 교훈을 이어받은 여러 주지 및 문하승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