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신미륵은 높이 약 2.8m에 이르는 2기의 석조불상으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석상이다. 이 석상들은 제주시 건입동과 용담2동에 1.56km의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본 채 각각 세워져 있는데, 지금의 위치는 원래 제주읍성의 동쪽과 서쪽에 해당된다. 건입동에 있는 복신미륵은 ‘동자복’으로 칭해지고 있으며 용담2동에 있는 것은 ‘서자복’으로 불리고 있다.
복신미륵의 조성 시기는 조선 후기로 알려져 왔다. 그 이유는 이 석불입상이 18세기 제주도에서 조성된 동자석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의 복신미륵은 1704년(숙종 30) 이형상이 저술한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이미 언급된 불상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남환박물』은 1702년(숙종 28)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제주 목사로 재직한 이형상이 제주 지방의 풍물을 소개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현재 동자복이 있는 곳에는 만수사(萬壽寺)라는 사찰이 있었고, 서자복이 있는 곳에는 해륜사(海輪寺)라는 사찰이 존재했다는 사항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복신미륵은 적어도 18세기 이전에 조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복신미륵은 정상부에 돌출된 장식이 있는 원정모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 원정모형 보개는 15세기에 제작된 불상에서 잠시동안 유행하였던 양식이다. 복신미륵은 상호와 법의의 표현 기법이 제주도 대정현성(1418년 축성) · 정의현성(1423년 축성) 돌하르방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특히 대정현성 돌하르방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얼굴 부분에서 그러한 점을 살필 수 있다. 먼저 눈의 모습을 보면 대정현성 돌하르방과 복신미륵의 눈은 얼굴 표면에서 융기한 듯이 조각되어 있다. 반면에 제주읍성 돌하르방은 눈 주위에 깊은 음각선을 새겨 눈이 둥글게 튀어나온 형상을 취하고 있다. 또한 복신미륵과 대정현성 돌하르방의 입술선은 부드럽게 휘어져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게 만들어져 있어 친근하게 웃는 모습이다. 하지만 제주읍성 돌하르방과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경우는 일자로 굳게 다문 입을 하고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있다. 복신미륵과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귀의 모습도 매우 유사한데, 둘 다 두터운 ‘C’자형의 귀를 갖고 있다.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귀 역시 복신미륵과 매우 유사한 두터운 ‘C’자형 귀이다. 이에 반해 제주읍성 돌하르방의 귀는 두터운 ‘I’자형 귀이다. 복신미륵과 대정현성 돌하르방은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손의 자세 역시 비슷한 점이 있다.
대정현성과 정의현성 돌하르방은 현성이 축성된 직후인 조선 초기에 성문 앞에 세워졌다. 15세기 유행하였던 원정모를 착용한 복신미륵은 건립 위치상 제주읍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즉 대정현성 ·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배치와 같이 복신미륵도 제주읍성의 동쪽과 서쪽에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원정모형 보개, 불상의 위치, 대정현성 및 정의현성 돌하르방의 조형성을 모방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복신미륵은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