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李鄕)·조시원(趙時元)·김연창(金演彰)·유우석(柳愚錫)·한하연(韓何然) 등의 무정부주의자 그룹이 조직한 비밀결사로서 대중적 청년조직체인 원산청년회를 중심으로 사상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당시는 공산주의계열의 북풍회(北風會)·화요회(火曜會) 등 각 분파가 세력확장에 열중하던 시기이며, 이주하(李舟河)·김삼룡(金三龍)·강기덕(康基德)·장기욱(張基郁) 등 거물급들이 원산과 경성을 빈번히 왕래하고 있어, 원산에서의 아나(무정부주의)와 보르(공산주의) 양 계열의 격돌은 일촉즉발의 풍운을 안고 있었다.
양 계열 충돌의 도화선이 된 것은 본능아연맹측과 청년회간의 경리장부사건, 원산여자청년회에서 개최한 강연회에서의 충돌사건이었다. 이 때 본능아연맹의 유우석·한하연과 서수학(徐洙學)이 중상을 입고 응급치료를 받다가 서수학이 사망하니, 유우석은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되어 1927년 12월 1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3년 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다음해 7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정당방위로 판명되어 무죄 선고되었다. 그러나 장기욱이 고소한 상해죄부분은 유죄가 인정되어 벌금 30원의 판결을 받았다. 이러는 동안 보르측이 원산청년당을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본능아연맹간에 여러 차례의 연쇄적 충돌이 일어나 일본경찰의 개입을 초래하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