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부(傅)는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 소속의 정1품 관직이다. 세자의 서연(書筵)을 책임지는 관직으로 좌의정 또는 우의정이 겸직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관제를 정비하면서 세자 교육을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였다. 1401년 주나라 제도에 근거하여 세자사(世子師)와 세자부(世子傅)를 두었다.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사부 직제는 계승되었다. 세자와 함께 매달 2일과 16일에 열리는 회강(會講)에 참석하여 학습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산림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이들을 특별히 제수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의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 소속의 정1품 관직.
개설
내용
이후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칭된 뒤에도 사 · 부 등의 직제가 그대로 계승된 듯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세자시강원 관원은 정1품으로 영의정이 겸하던 사(師)와 좌의정 또는 우의정이 겸하던 부(傅) 등과 함께 종1품으로 찬성이 겸하던 이사(貳師) 등이 규정되었다.
부는 세자의 서연(書筵)을 주관하는데, 매달 2일과 16일에 열리는 회강(會講) 시에 세자는 동벽(東壁)에 자리하여 서향(西向)하고 사 · 부 등은 서벽에 앉아 동향해서 전날의 서연 내용을 점검한 뒤에 새로운 내용을 학습하였다. 회강이 끝나 사 · 부 등이 계단을 내려가면 왕세자가 동쪽 계단 아래로 내려와 전송하도록 하였다. 스승의 예를 표시한 것이었다. 회강 이외에 조강(朝講) · 주강(晝講) · 석강(夕講) 등의 경우에는 정2품의 관직인 빈객(賓客)이 주도하였다. 사 · 부 등은 또한 세자가 서연에 학습하는 텍스트를 결정하기도 하였고, 왕세자가 국왕을 수가(隨駕)하거나 혹은 거둥할 때에는 지영(祗迎)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세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 · 부의 경우, 사망하면 왕세자가 거애(擧哀)하고 조문하며 부의하는 것이 관례였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시강원지(侍講院志)』
- 『조선후기 왕실교육』(육수화, 민속원, 2008)
- 「『효종동궁일기』를 통해 본 서연 양상」(김종수, 『규장각』 31, 200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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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기원전 1046년에서 기원전 256년까지 중국을 지배하던 왕조.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하여, 호경에 도읍을 정하고 봉건 제도를 시행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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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거둥 때에, 임금을 모시고 따라다니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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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임금의 나들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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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백관이 임금의 환행을 공경하여 맞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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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상례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고 나서 상제가 머리를 풀고 슬피 울어 초상난 것을 알림. 또는 그런 절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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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한 달에 두 번씩 왕세자가 그의 교육을 맡은 사부와 벼슬아치 앞에서 이미 배운 것을 복습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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