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골에 있는 해발 140m의 성재산 중복(中腹) 남사면에는 판석조석실분(板石造石室墳), 할석조석실분(割石造石室墳), 괴석조석실분(塊石造石室墳)이 혼재되어 있어 그 수가 100여 기에 이른다. 그 중 괴석조석실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신성리고분군이 소재한 규암면은 부여 도성(扶餘都城)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고분군의 전방 약 0.5∼1㎞ 거리에는 금곡천(琴谷川)이 흐르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계곡평야가 상당한 면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판석조석실분인 신성리 1호분은 동쪽으로 약 10°가량 기울어진 채 남향을 하고 있다. 묘실(墓室)의 전체 길이는 2.4m이다. 현실(玄室)은 길이 2.32m, 너비 76㎝, 벽 높이 60㎝, 천장 높이 89㎝이다. 연도(羨道)는 길이 8㎝, 너비 68㎝이다.
현실과 연도간의 너비의 차이는 거의 없으나 길이의 차이는 거의 30:1에 이른다. 연도의 길이가 이렇게 급격히 짧아지는 것은 백제 후기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연도를 이런 식으로 거의 형식적으로만 축조하다가 나중에는 생략시켜버린다.
천장형태는 동·서벽 위에 장대석(長臺石)을 안쪽으로 기울게 올려놓아 꺾임천장식〔平斜天障式〕을 만들었다. 형식으로 보아 7세기 초에서 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 같다.
소규모 할석조석실분의 주변에 무수히 많은 백제토기조각들이 산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당초에는 부장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도굴되어 현재로서는 1점도 확인할 수 없다.
한편, 신성리 은산골에 있는 고분군의 북쪽에는 백제시대의 산성인 증산성(甑山城)이 가까이 위치해 있어 이 고분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분군이 위치한 곳의 지형을 보면, 북쪽으로는 주산인 성재산이 있고, 동쪽과 서쪽으로는 주산에서 뻗어 나온 지맥이 있으며, 고분의 앞쪽으로는 하천과 함께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이 고분군은 사신사상(四神思想)에 입각해서 묘지를 선정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