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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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지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지
건축
유적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관련 비터.
이칭
이칭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北漢山 眞興王 巡狩碑址)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2년 07월 24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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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관련 비터.
내용

197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1,697㎡. 이곳의 비석은 북한산 뒤편 승가사(僧伽寺)에서 위쪽으로 8㎞ 가량 떨어진 북한산 연봉의 비봉(碑峰) 정상에 세워졌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말기의 금석학자인 김정희(金正喜)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는 1816년(순조 16)에 이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당시에는 비 갓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비문은 확인하지 못하였다가 이듬해에 다시 올라가 68자를 확인하고 그것이 신라진흥왕순수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자리는 자연 암반에 얕은 2단의 비좌(碑座)를 내고 그 가운데에는 비신(碑身)을 꽂은 홈이 장방형으로 남아 있으며, 이 비석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지(標識)가 있다.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1962년 지정)는 그간 오랜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아래쪽 귀가 떨어져나가고 6·25동란으로 인한 총탄자국 등 상처를 입어 이에 대한 보호책이 강구되어 1972년 8월 17일에 경복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옮길 당시 이 비석은 아랫부분이 길이 7㎝, 두께 3㎝의 철심으로 암반에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전 작업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1986년 8월 이 비석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추사집(秋史集)』(김정희)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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