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1,697㎡. 이곳의 비석은 북한산 뒤편 승가사(僧伽寺)에서 위쪽으로 8㎞ 가량 떨어진 북한산 연봉의 비봉(碑峰) 정상에 세워졌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말기의 금석학자인 김정희(金正喜)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는 1816년(순조 16)에 이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당시에는 비 갓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비문은 확인하지 못하였다가 이듬해에 다시 올라가 68자를 확인하고 그것이 신라진흥왕순수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자리는 자연 암반에 얕은 2단의 비좌(碑座)를 내고 그 가운데에는 비신(碑身)을 꽂은 홈이 장방형으로 남아 있으며, 이 비석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지(標識)가 있다.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1962년 지정)는 그간 오랜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아래쪽 귀가 떨어져나가고 6·25동란으로 인한 총탄자국 등 상처를 입어 이에 대한 보호책이 강구되어 1972년 8월 17일에 경복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옮길 당시 이 비석은 아랫부분이 길이 7㎝, 두께 3㎝의 철심으로 암반에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전 작업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1986년 8월 이 비석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