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년 건립. 비신높이 173㎝, 너비 102㎝, 두께 22㎝. 197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신은 절단되어 상 · 하부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진공(眞空)은 경주출신으로 성은 김씨이다. 일찍이 가야산 선융(善融)의 제자가 되었으며, 20세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소백산에 절을 짓고 주지로 있다가 태조 20년(937) 9월 문인에게 유계(遺誡)를 알리면서 입적하였다.
이에 태조는 ‘진공대사’라는 시호를 주고 ‘보법(普法)’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글씨는 자경(字徑) 2㎝의 구양순체(歐陽詢體) 해서로 이환추(李桓樞)가 썼다.
비음(碑陰)에는 진공의 유계를 새겼는데 역시 구양순체의 해서이다. 이수(螭首) 가운데의 ‘故眞空大師碑(고진공대사비)’라는 전액도 이환추가 썼다.
그런데 비문 가운데 보이는 ‘청구(靑丘)’라는 구절은 조선의 별칭으로서, 이 비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귀부(龜趺)는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새김이 얕으며 등에는 낮은 비좌(碑座)가 있고, 이수는 산모양으로 도식화된 운룡문(雲龍文)이 얕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