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례(三歸禮) · 삼귀계(三歸戒)라고도 한다. 삼귀의는 불교의 어떤 의식에서나 필수적으로 가장 먼저 행하여진다. 계를 받아 불교신도 또는 승려가 되기 전, 또는 법회(法會)를 시작하기 전, 재(齋)를 열기 전에 먼저 귀의불 · 귀의법 · 귀의승의 삼귀의를 행한 뒤, 수계를 받거나 법회 또는 재를 개최하게 된다. 즉, 삼귀의를 한다는 것은 불교도임을 천명하는 선행된 의식이기도 하다.
삼귀의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은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이며,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예경(禮敬)을 하게 된다. 귀의불양족존이란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며, 대원(大願)과 수행, 복덕(福德)과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귀의법이욕존은 불법(佛法)이 일체의 허망됨과 욕심을 떠난 청정한 법이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귀의승중중존은 승이 일체의 대중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 아침 저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오분향예불문(五分香禮佛文)」 또한 이 삼귀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의식화시킨 것이다. 이 예불문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삼보를 함께 취하는 한편, 귀의승에다 신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대표적인 보살(菩薩)의 명칭과 석가모니 당시의 대표적인 제자 집단, 그 밖의 인도 · 중국 · 우리 나라의 성현들을 함께 수용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그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삼귀의를 더욱 강조하여 ‘귀명삼보(歸命三寶)’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 고려 말기의 나옹(懶翁)은 자심삼보(自心三寶)에 귀의할 것을 강조하였다.
나옹은 귀의를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항상 분명히 깨달아서 허명영묘(虛明靈妙)하고 천연(天然) 그 자체로서 조그마한 조작도 없는 것을 ‘자심불보(自心佛寶)’, 탐애를 아주 떠나서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을 ‘자심법보(自心法寶)’,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것을 ‘자심승보(自心僧寶)’라고 정의하였다. 삼귀의례가 귀의의 대상을 외부에다 둔 타력신앙(他力信仰)의 성격을 가진 것인 데 대하여, 나옹의 자심삼보는 자기의 마음을 삼보로 삼아 스스로를 깨우쳐 간다는 자력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