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숙종 33)에 건립된 사적비로 198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방형의 대좌는 윗부분을 모깎이 형식으로 다듬어 그 위에 비신을 끼웠으며, 비신 위에는 지붕돌이 씌워져 있다.
비문은 다소 마멸된 부분이 있으나 신라 때 원효(元曉)대사가 처음 터를 잡고 띠집을 지어 수도 정진하던 것이 이 사찰의 시초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새 절을 지어 관음사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고려 말기에는 지공(指空) · 나옹(懶翁)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러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삼먁사 · 삼막사 등으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지붕돌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네 귀의 추녀 끝은 반전하여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이 비석은 소박하고 평범한 조선시대의 석비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삼막사의 내력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취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