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가 서로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한 능 앞의 계단에서 1592년 ‘古寧國太祖伽倻王陵(고령국태조가야왕릉)’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묘비가 발견되어 당시 관찰사 김수(金睟)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國弼) 등에 의하여 확인된 뒤 지금까지 고령가야왕의 능으로 전해오고 있다.
묘비석이 발견된 뒤 자손들이 매년 10월 1일과 3월 15일에 향사를 지내오고 있으며, 조선 숙종 때는 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다시 건립하였다.
또한, 옛 문헌에도 가야왕릉이 현의 남쪽 2리쯤에 있다고 전해오고 있고, 본현의 김씨(金氏)가 그 자손으로 비를 세워 수호하고 있으며,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이 무덤을 가야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300m 정도 떨어진 봉토분은 그 왕비의 능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의 내용대로 가야시대의 것이라면 수혈식 석실분(竪穴式石室墳) 또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