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박민효의 6대손 박순하(朴舜河)·박종하(朴鍾河)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유필영(柳必永)의 서문과 권말에 장석영(張錫英)·박종하·박순하의 발문이 있다.
5권 2책. 목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두에 총목차가 있고, 권1에 시 118수, 권2에 서(書) 16편, 서(序) 6편, 기(記) 3편, 발(跋) 2편, 명(銘) 1편, 권3에 잡저 7편, 상량문 1편, 축문·고유문 각 4편, 권4에 제문 8편, 전(傳)·행록(行錄) 각 1편, 권5에 부록으로 상체헌기(常棣軒記)·도호감효설(盜虎感孝說)·만사·행략(行略)·가장(家狀)·유사·행장·묘갈명·입사통문(立祠通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송별시·차운시(次韻詩)·만시(挽詩)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수시·영물시(詠物詩)도 있다. 「망일헌(望日軒)」·「차오경백(次吳慶伯)」·「여제우분운(與諸友分韻)」 등 13수는 스승 권해(權瑎)가 평양부윤으로 부임할 때 수행하며 지은 시들이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밖에도 「경차선생제석운(敬次先生除夕韻)」 등 권해·이재(李裁)·이형상(李衡祥)·권상일(權相一) 등의 시에 차운한 시와 「갈암선생만(葛菴先生挽)」 등의 만시가 있다.
서(書)는 주로 이현일(李玄逸)·신유한(申維翰)·박문수(朴文秀) 등 당시의 명사들과 안부를 묻고 시사(時事)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 대부분이다. 「답혹인용학문목(答或人庸學問目)」은 『중용』과 『대학』에서 의문이 나는 부분을 문답식으로 풀이한 서한이다. 서(序) 가운데 「사서주토서(四書註吐序)」·「동감촬요서(東鑑撮要序)」·「춘추인씨지서(春秋人氏志序)」는 자신의 저서에 붙인 서문이다.
잡저의 「오릉변(五陵辨)」과 「오릉변후설(五陵辨後說)」은 당시 경주에 있는 오릉이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무덤을 다섯 군데로 분산시켜서 4개의 가묘를 만든 것이라는 설에 반대해, 신라 역대 왕 중 누구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섯 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을 편 글이다. 「팔대군분봉설(八大君分封說)」은 석탈해(昔脫解)가 유리왕(儒理王)의 아들 8인을 봉군했다는 설과, 경명왕의 여덟 왕자를 봉군했다는 이설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경해변론(經解辨論)」과 「경서차의(經書箚義)」는 경전의 의심나는 구절이나 문구를 해설한 것이다. 이밖에도 『십구사략』을 평론한 「십구사략설(十九史略說)」과 기생의 딸 자란(紫鸞)의 수절을 칭찬한 「자란전(紫鸞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