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한국학교(上海韓國學校)는 일제강점기에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인성학교(仁成學校)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인성학교는 1916년 가을, 상해 교회를 중심으로 여운형, 선우혁(鮮于爀) 등이 교민들의 교육을 담당할 교육기관을 설립할 것을 결의, 학생 4명으로 상해기독교소학교(上海基督敎小學校)로 개교하였다.
이듬해 2월 공동조계(共同租界)에서 학교명을 인성학교로 바꾸고 교민(僑民)들의 정식 초등교육기관으로 출범하였다. 인성학교의 초대 교장 여운형은 학교의 재정난으로 여러 차례 학교를 옮겼다.
이 학교는 1935년에 선우혁 교장이 일제의 일본어교육 실시 요구에 불복하여 무기한 휴학, 폐교 상태에 이르렀으며, 광복 후 학생 수가 감소하여 1981년 이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정부 반환 이후, 한중관계가 강화되고 거주하는 교민 자녀들에 대한 한국교육과정 제공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1999년 4월 2일 상해한국학교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1999년 7월 한국 교육부에 학교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상해시 교육위원회가 상해한국학교 설립인가를 해줌으로써 9월에 개학식(47명, 3학급)을 거행하였다.
초대 교장으로 양금영(楊金永)이 파견되어 학사 운영을 이끌었다. 1999년 10월 중국 국가교육위원회로부터 상해한국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개교식은 11월 6일 상해 총영사관과 학교설립추진위원회의 협조를 얻어 거행되었으며, 개교식이 끝나고 한국학교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바자회와 개교기념 운동회도 실시되었다.
상해한국학교는 중국 최대경제도시인 상해에서 교민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국적교육을 바탕으로 외국어(영어·중국어) 및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여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인을 육성하는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 학교는 상해에 있는 타국제학교에 뒤지지 않는 신축교사를 확보하고 냉난방 시설과 인터넷 정보시스템을 갖춘 우수한 학교로서 한국교육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한인들이 국제수준의 쾌적한 학교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제공 받아 한인교육센터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통학이 불편한 상해 인근지역 교민자녀들을 위하여 기숙사도 설립하였다. 또한, 한국문화를 배우기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8월 당시 학생은 초등과정 24학급 541명, 중등과정 9학급 191명, 고등과정 12학급 328명이 재학하였다. 교직원은 파견 교장 1명, 교감 1명, 초등교사 24명, 중등교사 58명, 영어 원어민 교사 15명, 중국어 원어민 교사 14명 등 총 114명의 교원이 근무하였으며, 이 밖에 일반 행정직 및 기능직 15명이 근무하였다.
학교의 시설 현황은 대지 면적 26,895㎡, 건물 연면적 18,747㎡이며, 일반 교실 47, 외국어실 17, 컴퓨터실, 음악실, 미술실 등 특별실 18, 행정실, 홍보실, 음악실, 식당, 강당 등을 갖추고 있다.
교육과정은 한국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영어, 중국어 등 현지 실정을 고려하여 편성·운영하고 있다. 초등 3∼6학년은 일반 과목 주당 22시간, 영어 5시간, 중국어 5시간, 재량활동으로 컴퓨터 1시간, 특별활동 1시간, 주당 전체 34시간을 운영하고 있고, 중학생의 경우 영어 주당 9시간, 중국어 주당 6시간 등을 포함하여 주당 전체 38시간을 운영하며, 고등학교 2∼3학년의 경우 영어 과목을 주당 10∼19시간까지 선택하여 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상해한국학교는 민족교육의 요람이라는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학교로서 교육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해는 중국 정부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개방화가 진행되면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국제적 도시다. 외국계 학교가 다수 있었지만 초기에 해외 근무를 하는 주재원 자녀들이 이들 학교에 진학하여 적응하는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상해한국학교의 설립과 더불어 쉽게 해소되었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지상사 직원 자녀들이 외국계 국제학교에 재학할 경우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를 직접적으로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한국교육과정에 적응하는데 드는 경비와 노력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이 학교는 국가를 침탈 당한 상황에서도 교육을 통하여 광복을 찾으려고 했던 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외국에서 애국하는 정신을 배양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