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교사 ( )

목차
관련 정보
불교
유적
618년에,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사카모토[坂本]에 있는 쇼토쿠[聖德] 태자가 고구려 승려 혜자(惠慈)를 위해 창건한 사찰.
이칭
이칭
사이쿄지[西敎寺]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교사는 일본 시가현 오츠시 사카모토에 있는 쇼토쿠태자가 618년에 고구려 승려 혜자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10세기 대로 보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 진성파(眞盛派)의 본산(本山)이며, 정식 명칭은 가이코산 겐호쇼 사이쿄지[戒光山 兼法勝 西敎寺]이다. 15세기에 들어와 신세이[眞盛]가 계율(戒律)과 염불(念佛)을 중시하며 천태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절의 중흥(中興)을 이끌었다.

목차
정의
618년에,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사카모토[坂本]에 있는 쇼토쿠[聖德] 태자가 고구려 승려 혜자(惠慈)를 위해 창건한 사찰.
연원 및 변천

서교사는 천태종 진성파의 본산(本山)이다. 산호(山號)는 가이코산[戒光山], 본존(本尊)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이다.

이 절은 「서교사연기(西敎寺緣起)」와 근세시대 지방지(地方誌)에 의하면 618년에 쇼토쿠태자가 자신의 은사(恩師)인 고구려 승려 혜자를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덴지[天智] 천황 때 장륙(丈六)의 아미타불을 안치하고 ‘서교사(西敎寺)’라는 칙액(勅額)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1495년에 편찬된 『진성상인왕생전기(眞盛上人往生傳記)』 및 아미타불 양식 등을 토대로 10세기 대로 보기도 하듯이 명확하지 않다.

이후 엔간[圓觀]이 1325년에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의 칙명(勅命)을 받아 재흥시켰다. 이때부터 서교사는 원계도장(圓戒道場: 천태종의 계율을 받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 1486년, 신세이가 이 절에 들어가 원계염불(圓戒念佛)의 근본 도량으로 발전시켰다. 신세이는 계율염불을 동시에 중시하였고, 당시 궁중에서 황족과 귀족들에게도 설법(說法)을 전파하면서 서교사의 중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1571년, 전국시대(戰國時代) 혼란기에 서교사는 소실되었다. 1574년, 신겐[眞源]이 본당을 다시 세우고, 죠후쿠지[淨福寺]에 안치되어 있었던 아미타여래 좌상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奉安)하였다. 이후 사카모토 성주[坂本城主]였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 光秀]가 이 절의 부흥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였다. 그 결과 대본방(大本坊) · 총문(總門) · 종루(鐘樓)를 재건할 수 있었다.

한편, 1590년부터 황폐해진 교토의 호쇼지[法勝寺]의 불상과 불구(佛具) 등을 이곳으로 옮겨 겐호쇼 사이쿄지[兼法勝 西敎寺]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598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모모야마성[桃山城] 구전(舊殿)의 일부를 옮겨 짓기도 하였다. 그리고 1739년, 신사이[眞際]가 현재의 본당을 재건하였고, 그 신앙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천태율종(天台律宗)으로 일컬어졌다.

1878년에는 천태종 중 하나인 진성파의 총본산이 되었으며, 1946년 천태진성종(天台眞盛宗)으로 개칭하였다.

현황

이 절은 400여 개의 말사(末寺)를 가질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상염불(常念佛)의 도량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회화 · 건축 · 공예 등 20점의 중요 문화유산과 32점의 국가 등록 유형 문화유산, 그리고 1만여 점의 고문서(古文書)를 소장하고 있다. 또한 아케치 집안의 묘와 미쓰히데의 공양탑(供養塔)이 세워져 있다.

홈페이지에서 서교사의 가람 구조 및 중요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서교사연기(西敎寺緣起)」

단행본

關晃, 『歸化人』 (至文堂, 1966)
段熙麟, 『日本に殘る古代朝鮮』 (創元社, 1976)
井上靖 외, 『古寺巡禮近江5-西敎寺』 (淡交社, 1980)
『西敎寺の歷史と寺寶』 (西敎寺, 1989)

인터넷 자료

天台真盛宗総本山 西敎寺(http://www.saikyoji.org)
집필자
박재용(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