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간사 ()

목차
관련 정보
불교
유적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가이즈카시[貝塚市] 미즈마[水間]에 있는, 백제계 후손인 교기[行基]가 창건한 사찰.
이칭
이칭
류고쿠산 간논인[龍谷山觀音院], 미즈마간논[水間觀音]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수간사(水間寺)는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가이즈카시[貝塚市] 미즈마[水間]에 있는, 백제계 후손인 교기[行基]가 창건한 사찰이다. 일본 쇼무[聖武] 천황의 병 쾌유를 빌기 위해 관음보살상을 본존으로 안치하였다. 천태종에 속해 있으며 류고쿠산[龍谷山]의 간논인[觀音院]이라고도 한다. 1190년에 칠당가람을 갖추었으며, 150여 개의 당우를 세울 정도로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현재 고대 일본의 관음신앙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관련 사찰의 구조 및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정의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가이즈카시[貝塚市] 미즈마[水間]에 있는, 백제계 후손인 교기[行基]가 창건한 사찰.
건립경위

수간사는 천태종(天台宗)에 속해 있으며, 본존은 성관세음보살(聖觀世音菩薩)이다. 일반적으로 미즈마간논[水間觀音]이라 하는데 잡귀를 물리치는 데 영험이 있다고 한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8세기 중반 쇼무[聖武] 천황의 명에 의해 백제계의 후손인 교기[行基, 668~749년]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교기는 일본『논어』와 『천자문』을 전해 준 백제의 학자인 왕인(王仁)의 후예이다. 교기의 아버지는 백제계 씨족인 고시씨(高志氏) 집안사람이며, 어머니 역시 백제계였다. 일본 역사상 최초로 대승정(大僧正)에 임명되었으며 그가 활동하던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진정한 불교 지도자의 이상형으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에는 천황의 요청으로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 건립에도 참여할 만큼 정치 ·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때 백제왕의 후손들이 황금을 헌납하여 도다이지의 대불을 완성할 수 있었다.

797년에 편찬된 『속일본기』에는 이 절의 창건 배경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실려 있다. 당시 병상에 있던 쇼무천황의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자 천황은 교기에게 명하여 관음보살을 구하도록 하였다. 이에 교기는 가이즈카[貝塚] 지역으로 가는 도중 관음보살의 화신인 16동자의 인도로 2개의 강이 합류하는 ‘마즈마(水間)’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때 폭포에서 용신(龍神)이 나타나 성관음상을 주어 이 절을 짓고 모셨다고 한다.

이후 757년에는 불사리를 이 절의 다보탑에 안치했다. 1190년에는 칠당 가람을 갖추었으며, 당우도 150여 개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화천국사청선안(和泉國司廳宣案)」에 의하면 1227년에 이 절은 면전(免田), 즉 과세되지 않는 7정(町)의 논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북조시대에는 남조의 조정으로부터 별당직(別堂職)이라는 직책과 사령(寺領)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1395년에 이즈미[和泉] 지역을 관장하는 무사인 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가 절의 수리를 위해 논 5정 7반(反)을 기부하였다. 1537년에는 노다산성주[野田山城主]인 마츠라마모루[松浦守]가 전지 등을 기부한 것 등으로 미루어 이 지역의 무사들로부터 신앙을 두텁게 받아 번영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585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측의 공격을 받아 약사당(藥師堂)과 개산당(開山堂)을 제외한 대부분의 당우가 소실되었다. 심지어 1456년 이후 줄곧 사용해 왔던 동종(銅鐘)마저 간센지[願泉寺]에 팔았다.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도요토미 백모의 사위인 고이데 히데마사[小出秀政]가 기시와다[岸和田]의 성주가 되자 그의 기원소(祈願所)가 되었다. 1638년에는 같은 성의 성주이었던 마츠이 야스시게[松井康重]가 많은 논밭을 이 절에 기부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성주가 된 오카베[岡部]도 토지를 기부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연보연간(延寶年間, 16731681)에는 금당(金堂)과 진수사(鎭守社)를 재건할 수 있었다. 원록연간(元錄年間, 16881704)에는 삼중탑(三重塔) · 호마당(護摩堂) · 식당(食堂)을 다시 건립하였다. 그리고 1784년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본당(本堂)과 오층탑(五層塔)을 소실하고 말았으나, 1811~1834년 사이에 오카베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형태와 특징

현재 경내에는 가이즈카시 문화유산인 본당과 삼층탑을 비롯해서 경당(經堂) · 관음원(觀音院) · 애염당(愛染堂) · 개산당(開山堂) · 변천당(弁天堂) · 약사당 · 남원(南院)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애염당의 앞에는 「오색오인녀(五色五人女)」 · 「오십년기가염불(五十年忌歌念佛)」이라는 근세 소설의 등장인물로 유명한 오나츠[お夏]와 세이주로[淸十郎]의 묘지석이 세워져 있다. 주요 행사는 매년 1월 2일과 3일에 치러진다.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 1,000개를 가지고 떡을 찧는 특이한 행사이다. 이 절은 신서국 33소(新西國三十三所)의 관음영장(觀音靈場) 가운데 4번째의 순례지로 꼽히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續日本紀』

단행본

段熙麟, 『日本に殘る古代朝鮮』 (創元社, 1976)
田村圓澄, 『古代朝鮮佛敎と日本佛敎』 (吉川弘文館, 1980)
司馬遼太郎, 上田正昭, 金達壽 編, 『日本の渡來文化』 (中央公論社, 1982)
段熙麟, 『日本史に生きた渡來人たち』 (松籟社, 1986)
井上薫, 『行基 人物叢書 新装版』 (吉川弘文館, 1987)
『水間寺の歷史と寺寶』 (貝塚市敎育委員會, 2012)

인터넷 자료

https://mizumadera.or.jp
집필자
박재용(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