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동 본향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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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문동 본향당 내부
제주 중문동 본향당 내부
민간신앙
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중문이하로산과 진궁부인 부부를 모신 신당. 마을신당.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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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지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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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중문이하로산과 진궁부인 부부를 모신 신당. 마을신당.
내용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으로 중문마을 서쪽의 배꿋내라는 냇가에 있다. 당은 이 냇가에 있는 ‘ᄃᆞ람지궤’라는 굴이다. 굴은 70∼80명이 들어앉을 만한 넓이의 것인데, 그 안쪽에 시멘트로 길쭉하게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제단 위 바위벽에 신체(神體)를 모시는 상자를 장치해 놓고 있다.

신체는 천으로 감아 묶어 자그마하게 十(십)자형으로 만들어 물색 옷을 입힌 것으로 10개가 있는데, 남신에게는 쾌자를 입히고 여신에게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혔다. 신체는 상자 속에 안치해 두었다가 당굿을 할 때는 꺼내어 제단에 모셔 앉힌다. 당의 제일(祭日)은 정월보름과 팔월보름으로 연 2회 당굿을 크게 한다.

마을을 세운 성씨는 임씨(林氏)와 이씨(李氏)라 하는데, 임씨 집안과 이씨 집안이 지금도 상단골(上位의 신앙씨족)이 되어 있다. 그래서 상단골 집안에서 당굿의 준비를 하여 매인 심방(당에 딸린 무당)을 시켜 당굿을 하게 하며, 신체의 옷(神衣)이 더러워지면 새로 만들어 입히고는 한다. 당굿 때는 마을 각 호에서 부녀자들이 제물을 차려 가지고 와서 종일 굿이 진행된다.

이 때 상단골 집안은 오른쪽 자리에 앉고, 다른 성씨들은 왼쪽 자리에 앉아 단골의 계층을 구분한다. 매인 심방은 김씨 할머니로부터 시작하여 오씨·강씨·현씨·정씨·강씨·고씨 심방을 거쳐 현재의 매인 심방 고씨(여)심방까지 8대를 이어왔다고 한다. 본향당의 신은 중문이하로산과 진궁부인 부부와 그 아들 부부이다. 이 신들이 당신이 된 내력을 설명하는 본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라산 서쪽허리 소못된밧이라는 곳에서 9형제가 솟아났다. 9형제는 성장하여 각각 당신이 되어 갈려져 갔는데, 다섯째 아우가 중문에 와서 당신이 되었다. 이름은 중문이하로산이다. 중문이하로산과 그 부인 진궁부인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이 일곱살 때 불효한 짓을 하였으므로 돌함에 담아 바다로 띄워버렸다.

돌함은 동해용왕국 황 정승 집의 산호수에 걸렸다. 황 정승의 막내딸이 돌함을 발견하여 아버지에게 보고하였다. 돌함은 막내딸에 의해 내려지고 열려졌다. 돌함 속에서는 옥동자가 나왔다. 황 정승은 장군감임을 알고 막내사위로 삼았다. 이 때 동해용왕국에는 병란이 일어났다. 막내사위는 군사를 거느리고 난을 평정하였다.

황 정승이 소원을 물으니 사위는 다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황 정승은 사위와 딸을 돌함에 담아 띄워주었다. 돌함은 중문 바닷가로 떠올랐다. 부부는 ᄃᆞ람지궤로 가서 부모와 같이 살다가 마을의 불목당에 갈려져 나와 따로 좌정했다. 그래서 마을에는 다람지궤(ᄃᆞ람지궤)라는 본향당과 불목당이라는 당이 있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남국의 무가』(진성기, 유인물, 1968)
집필자
현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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