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휴암리선사유적지(瑞山休巖里先史遺蹟址)는 1968년 5월 31일부터 6월 10일,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18일, 1969년 5월 8일부터 19일, 1970년 9월 7일부터 15일까지 총 4차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유적의 존재는 해당 토지의 소유주가 밭에서 수습한 석기와 토기를 박물관에 신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유적은 해발 50~76m의 언덕에 자리하며, 전체 면적은 2,010㎡이다. 1지점과 2지점으로 나누어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1지점에서는 신석기시대 돌깐 시설과 청동기시대 집터 2기, 2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9기와 야외 불뗀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1지점과 2지점은 행정구역상 구분되어 각각 충청남도의 해미면과 고북면에 자리하지만, 지형상 동일한 언덕 위에 있으며 약 400m 떨어져 있다.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은 해발 76m의 언덕 정상부 부근에 자리한다. 표면을 노출하는 선에서 조사가 마무리되어 정확한 구조를 파악할 수 없지만, 약 16×20m의 범위에 20~40㎝ 크기의 할석을 깐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자는 언덕 정상부에 자리한 점, 집터로 보기에는 규모가 크고 내부에서 불뗀자리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무덤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와 달리 높은 지역에 있는 ‘산상유적(山上遺蹟)’에 포함하여 해안지역 거주민의 어로 및 해양 활동과 관련된 제의 장소로 파악한 견해도 있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의 문양을 볼 때 신석기시대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출토 맥락이 분명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 추정은 어렵다. 이 밖에 둥근옥, 숫돌, 돌도끼 등의 유물도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터는 평면 네모꼴 8기, 둥근꼴 3기로, 중복 축조된 3호 · 4호 · 5호의 선후 관계를 통하여 네모꼴에서 둥근꼴의 변화가 상정된다. 면적은 네모꼴이 10~29㎡, 둥근꼴이 18~23㎡로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집터는 내부 중앙에서 긴둥근꼴 구덩이가 조사되었으며, 구덩이의 내부 양 끝에 2개의 기둥구멍이 자리한다.
2호와 3호에서는 긴둥근꼴 구덩이의 주변으로 사각형을 이루는 4개의 기둥구멍이 배치되는데, 이들은 모두 평면 둥근꼴 집터에 해당한다. 6호 집터의 바닥면에서는 점토로 다짐한 흔적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9호 집터만 유일하게 내부에서 긴둥근꼴 구덩이가 확인되지 않고 다수의 기둥구멍만 발견되었다. 11기의 집터 모두에서 출입 관련 시설이나 불뗀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붉은간토기, 간돌검, 간돌화살촉, 삼각모양돌칼, 조갯날도끼, 대팻날도끼, 숫돌,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과 네모꼴이 주를 이루는 집터의 평면 형태 등을 볼 때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인 송국리 문화 단계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판단된다. 절대연대(絕對年代)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외 불뗀자리로 보고된 유구는 도면이나 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보고서에는 8호 집터의 북서쪽, 7호 집터의 북동쪽 2m 지점에 자리한다는 사실과 지름 1m, 두께 35㎝ 정도의 불탄 층이 형성된 상태라는 내용만 언급되어 있다. 유구 내부에서 다수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으며, 동일한 문화 유형의 취락에서 일반적으로 야외 불뗀자리가 잘 관찰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토기 가마터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은 해안가 언덕 정상부 입지를 특징으로 하는 제의 관련 유구로서 앞으로의 유사 사례 증가와 함께 추가 연구가 기대된다. 청동기시대의 집터는 대부분 내부 중앙에 긴둥근꼴 구덩이가 자리한 송국리형(松菊里型)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집터 형태의 최초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학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 가운데 평면 네모꼴만을 휴암리형(休岩里型) 집터로 부르며, 송국리 문화 단계의 이른 시기를 나타내는 요소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송국리 문화의 발생과 전파 과정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