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문집 ()

서애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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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유성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33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유성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33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유성룡이 죽은 지 27년 만인 1633년(인조 11)에 막내아들 진(袗)이 합천군수로 있을 때 간행한 것이다. 문인 정경세(鄭經世)가 서애행장(西厓行狀)에서, “평생 지은 시문(詩文)이 임진병화(壬辰兵禍) 때 없어졌으며, 이제 문집 10권과 신종록(愼終錄)·영모록(永慕錄)·징비록(懲毖錄) 등이 집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 책에 실은 시문은 그가 지은 것 중의 일부이며, 많은 시문이 임진왜란 때 소진되었거나 없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서지적 사항

27권 14책. 목판본. 본집 20권, 별집 4권, 연보 3권, 도합 27권.이조참의 이민구(李敏求)의 서(序)와 예조참의 이준(李埈)·장현광(張顯光)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1958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 출간했는데, 임진왜란 전후사실을 기록한 『징비록』을 끝에 실었다.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있다.

내용

본집 권1·2에 시 220여수, 권3에 주문(奏文) 4편, 소 4편, 권4에 소 7편, 권5에 차(箚) 8편, 권6에 서장(書狀) 25편, 권9에 정문(呈文) 5편, 서(書) 13편, 권10∼12에 서(書) 139편, 권13∼16에 잡저로 독사려측(讀史蠡測)·상장질의(喪葬質疑)·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북변헌책의(北邊獻策議)·공물작미의(貢物作米議)·심유격구통사왜국의(沈遊擊求通事倭國議)·책문삼수(策問三首) 등 127편, 권17에 서(序) 6편, 기 3편, 논 3편, 발 6편, 권18에 발 29편, 전(箋) 1편, 명 2편, 권19에 제문 10편, 비갈 9편, 권20에 묘지 9편, 행장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 권1에 시 150여수, 권2에 소 3편, 차 5편, 계사 3편, 자문(咨文) 1편, 정문(呈文) 5편, 권3에 서(書) 70여편, 권4에 잡저 31편, 발문 3편, 명 1편, 제문 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는 서두에 세계도를 게재하고 있다.

권1·2는 유성룡 연보이고, 권3은 부록으로, 행장·교서·국왕치제문(國王致祭文)·동궁치제문(東宮致祭文)·병산서원봉안문·상향축문·남계서원봉안문·도남서원봉안문 등과 만사 19편이 게재되어 있다.

이 책은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593년 12월과 다음해 4월에 걸쳐 두 차례 올린 「진시무차( 陳時務箚)」에서 명나라가 원병을 보내왔지만 그들이 우리를 구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요해처(要害處)를 택해 굳게 지키도록 하되 백성들로 하여금 유사시에는 들어가서 지키게 하고 무사할 때는 나와서 경작하게 하면 왜병이 진격해 와도 얻을 것이 없으며, 퇴각해도 그곳에 우리 군사가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오래지 않아서 적은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백성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러한 뒤에 백성을 훈련시켜 적을 막도록 함이 현명한 계책이며, 연강(沿江)에 보(堡)를 설치하고 각 도의 방수계획을 세우는 것이 곧 적을 퇴치하는 방책임을 강조하였다.

권6에서 주목할 것은 1593년 2월에 올린 「진진휼기민사의장(陳賑恤飢民事宜狀)」과 그해 3월에 올린 「논군량민식장( 論軍糧民食狀)」에서는 왜병이 서울을 철수한 뒤 도성민의 굶주림에 관한 참상과 진구대책(賑救對策) 등을 개진하였다.

그는 명나라 원병이 평양으로 퇴각한 뒤 그들이 다시 진격해올 것에 대비한 군량미의 조치와 함경도 지방의 성지(城池)보수와 호령(號令)의 통일, 병기의 조치, 그리고 공을 세운 사람에게 양반은 물론, 천인에 이르기까지 상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 때에 양인(良人)은 1급(級) 이상, 서얼은 2급, 공사천(公私賤)은 3급을 참수하면 모두 허과(許科)하도록 하며, 공명고신첩(空明告身帖)을 원수부(元帥府)에 보내되 전공(戰功)의 진위(眞僞)를 철저히 조사해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의병 중에도 처음에는 공로가 컸으나 그 뒤 이득을 주기보다는 폐단을 끼치는 자도 있으니, 그들의 공로가 있고 없음을 가려서 공이 있는 자는 상을 주고 공이 없는 자는 다른 의병에 소속시키게 하면, 얼마 안 가서 의병은 모두 관군이 되어 군령(軍令)이 통일되고 민폐도 줄어들게 될 것임을 제시하였다.

권7의 「청광취인재계(請廣取人才啓)」에서 어려운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인물의 발굴을 위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2품 이상의 문무재신(文武宰臣)과 양사(兩司), 홍문관·감사(監司)·병사(兵事)·수령 등은 다음과 같은 인재를 발굴할 것을 주장하였다.

재주와 지혜가 있고 학식과 생각이 깊어 능히 장수가 될 재목을 갖춘 자, 학문과 기술을 구비하고 시무(時務)에도 어느 정도 밝으며 수령의 재목이 될만한 자, 담력도 있고 말솜씨도 좋아서 외국에 사신으로 갈만한 자라든가, 또는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인물, 효제(孝悌)로써 한 고장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순국할 것을 맹세하고 벼슬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문장이 뛰어나서 말주변이 좋은 자, 무술에 뛰어나고 담력이 있는 자, 농사기술이 밝아서 둔전(屯田)을 경작할 만한 자, 이재(理財)에 밝든가, 소금을 만드는 기술과 쇠붙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서 무역을 하여 이득을 올릴 수 있는 자, 계산이 밝아서 군량미의 조달을 감당할 수 있는 자, 창이나 칼을 제조할 수 있는 자와 염초(焰焇)를 만들거나 조총 및 성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자를 발굴할 것을 제시하였다.

권9의 서(書)에서는 명나라 경리(經理) 송응창(宋應昌) 등 명나라 장수들과 주고받은 많은 서신들이다. 임진왜란 중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권14의 잡저 중에 「공물작미의」에서는 공물을 미곡으로 납부토록 하여 백성의 어려움도 덜어주고 국가의 쓰임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권16의 「중강개시(中江開市)」에서는 유성룡이 진구(賑救)의 대책으로 ‘중강개시’를 주장해 중국의 미곡이 조선에 들어옴으로써 평안도 백성뿐 아니라 서울의 굶주리는 사람들까지도 구제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서애문집(西厓文集)』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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